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는 아인슈타인이 1915년 상대성이론에서 예측한 '중력파'를 100년 만에 실제 실험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한 미국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3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라이너 바이스(Rainer Weiss)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명예교수와 배리 배리시(Barry C. Barish)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교수, 킵 손(Kip S. Thorne) 칼텍 명예교수를 공동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5년 역사상 최초로 중력파 검출에 성공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이끌어나간 공로를 인정받았다. 중력파 관측은 금세기 최고의 발견으로 꼽히는 만큼 이들은 지난해부터 노벨 물리학상의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돼 왔다. 통상 연구성과를 낸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상을 주는 노벨상의 관례를 깰 정도로 이번 수상은 중력파가 인류 역사상 중요한 발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력파란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 위에 떨어지면 시공간이 출렁이며 물결처럼 전파되는 현상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물체가 움직이는 중력이 발생한다고 가정했다.
라이너 바이스와 킵 손 교수는 1990년대 중력파 측정을 위한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2002년 한 변의 길이가 4㎞에 달하는 'ㄴ'자 모양의 중력파 검출 실험 설비 라이고(LIGO)를 완공해 실제 관측을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마침내 2015년 9월 14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과 워싱턴주 핸포드에 위치한 두 대의 라이고가 동시에 중력파를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블랙홀과 같은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질이 아니면 파동의 세기가 너무 약해 관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지금까지 100년 동안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LIGO 연구팀이 관찰한 중력파의 최대 진폭은 10의 21거듭제곱분의 1로, 1광년(약 9조5000억㎞)의 길이에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변화가 생기는 것에 해당한다.
바이스 교수는 라이고의 작동 원리인 '레이저 간섭계' 기술을 중력파 탐사에 응용하는 아이디어를 구체화 했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고문으로 잘 알려진 이론 물리작자인 킵 손 교수는 라이고의 이론적 토대와 실제 중력파 신호를 찾기 위한 분석 방법 등을 연구했다. 라이고 설립의 핵심 역할을 했던 연구자인 로널드 드레버 칼텍 교수는 안타깝게도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나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배리 배리시 교수는 라이고의 제 2대 책임자로 라이고를 거대한 국제 공동 연구조직으로 성장시켰으며, 중력파 관측 연구가 순항할 수 있는 토대와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라이고는 20개국 이상에서 온 10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20여 명의 연구자로 이뤄진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이 참여하고 있다.
중력파는 기존에 천체 관측에 쓰이던 빛이나 전자기파로는 탐색할 수 없었던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모든 물질을 잘 투과하고 빛처럼 반사·왜곡되거나 전자기파와 같이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존에는 알 수 없었던 블랙홀과 같이 강력한 중력장 부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측정할 수 있고, 특히 초기 우주 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력파는 우주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지금까지 우주 탐사에는 우주선을 비롯해 중성미자 등 모든 종류의 전자기파와 입자가 사용돼왔다"며 "중력파는 시공간의 혼란을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증거로 완전히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201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왼쪽부터)라이너 바이스 MIT 명예교수, 배리 배리시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교수, 킵 손 칼텍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