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대신 '앱'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건강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약처럼 병을 직접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digital therapeutics)' 기술이 현실화되고 있다.
21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피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가 개발한 약물 중독 치료 앱 '리셋(reSET)'을 환자 치료 용도로 판매를 허가했다고 밝혔다. FDA가 별도의 기기 없이 앱만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질병 치료 목적으로 허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FDA 허가로 모바일 앱으로 인지 행동 치료를 제공하는 리셋은 약물 사용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병원에서 외래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게 됐다. FDA는 39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12주 동안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리셋을 사용한 환자의 알코올, 코카인, 마리화나, 각성제 등의 약물 사용 장애 환자의 금욕 준수율 40.3%로, 사용하지 않은 환자 17.6%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단, 아편 중독 환자에게선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이번 허가 사항에서 제외됐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이미 실리콘밸리에선 디지털 약이 기존 약을 대체하며 화학 합성 의약품, 바이오 의약품을 이을 '제3의 물결'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로 불리는 활동량 기록장치나 스마트 체중계 등과는 다른 기술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기존 의약품과 같은 임상시험 표준을 따라 효능을 입증하기도 한다.
미국의 버타 헬스(Virta Health)는 앱을 통해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제공해 약물 투여 없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10주간 식이요법을 제공 받은 환자 262명 중 절반의 혈당 지수가 정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임상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영국의 스타트업 빅헬스는 자사 불면증 앱의 '플라시보(위약)' 버전을 만들어 이를 임상시험에 사용했다. 그 결과 실제 훈련을 받은 그룹은 플라시보 앱으로 가짜 훈련을 받은 그룹보다 훨씬 우수한 효과를 나타냈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관계자는 "이번 FDA 허가로 앞으로도 비슷한 디지털 치료 제품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혁신적인 기술들을 어떻게 검토할지 허가 당국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