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국민참여개헌, `국민`은 어디에 있나](http://contents.dt.co.kr/images/201709/2017092002102351607001[1].jpg "[시론] 국민참여개헌, `국민`은 어디에 있나")
그런데 현재 개헌의 내용과 절차 모두가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이미 개헌이 물 건너갔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개헌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그 이유를 서로에게 떠넘기는 정치권의 태도를 보면, 말로만 국민참여개헌을 주장했지, 실제로는 국민을 들러리로 세우는 개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동안 국민참여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던 것은 현행헌법상 국민이 헌법개정발의권자가 아니지만,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해서 개헌안의 내용을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국민의 의사를 묻기도 전에 여야의 정치적 입장차로 인해 개헌이 힘들 것이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떻게 달리 해석할 수 있는가?
최근 국민들의 개헌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30년간 축적된 해묵은 과제를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개헌에 앞장서던 정치권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국민참여개헌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이른바 국민대토론회는 알맹이 없는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다.
국민참여개헌의 취지에 따르면 개헌안의 내용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 결정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개정발의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 개헌특위에서 -체계적 통일성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먼저 개헌의 기본 방향과 개별적 쟁점사항들에 대해 국민들에게 공지하고, 이에 관한 국민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적했듯이 내년 초에는 개헌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이미 국민의사의 수렴을 위해 개별적인 쟁점들이 정리되고, 국민들에 이를 공개해 다양한 형태의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아직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압축적인 경제성장이나 세계적인 공기 단축의 신화를 엮어내듯이 짧은 시간에 개헌안을 만들고, 쟁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헌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잠재력은 우리 국민들 안에 내재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적 압박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또다시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릴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점이다. 촛불시위로 대통령이나 국회를 압박해 다시금 개헌에 앞장서게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국민들이 열망하는 개헌이 무산될 경우 그 역풍은 결코 특정인이나 특정 정파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후폭풍 이상의 강력한 역풍이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많은 것을 얻고 또 잃었다. 얻은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주권자로서의 강한 자각과 민주의식이라면, 잃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주권의식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의 결합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촛불시위를 통해 한 번 불타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국민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신뢰를 잃고, 정치 자체를 불신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로 인해 정상적인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상실한 국민들이 보다 과격한 목표를 향해 촛불을 드는 일이 없기를 진정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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