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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산책] 공영방송의 본령의 생각한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입력: 2017-09-05 18:00
[2017년 09월 06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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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산책] 공영방송의 본령의 생각한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년 9월 3일은 54번째 맞는 방송의 날이었다. 방송의 날은 우리나라가 국제전기통신연합로부터 'HL'이라는 독자적인 콜사인을 부여받음으로써 방송 독립을 하게 된 1947년 9월 3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또한 2017년은 우리나라에서 방송을 시작한지 9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 2월 16일에 경성방송국에서 송출된 라디오 전파가 한반도에 최초로 널리 퍼졌으니, 2017년은 대한민국 방송사에 기억해야 할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월 1일 방송통신위원회 주관으로 400여 명의 정관계와 방송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방송의 날 축하연이 개최됐다. 그러나 금년의 축하연은 뜻 깊은 날로 기억되기 보다는 파행으로 치달은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그리고 여야 교섭단체 대표 등 초청인사는 불참하는 대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MBC본부 조합원들이 참석해 양사 사장 퇴진 구호를 외쳤다. 으레 대통령이 참석해서 축사를 낭독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총리도 아닌 방송통신위원장의 대독으로 의미는 퇴색했다.

지금 공영방송의 꼴이 말이 아니다. 언론노조 KBS본부와 MBC본부는 4일 총파업을 시작했다. 양사의 기자, PD, 아나운서 등 구성원들은 이사장과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내용면에서 예전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 한다. . MBC는 약 96%의 투표율에 약 93%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해 노동조합 역사상 최고의 찬성률을 보였다. KBS는 기자와 PD 등 약 1,200여 명이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여기에 더해 MBC 보직간부 50여 명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보직 사퇴를 선언했고, KBS 보직간부 역시 120여 명이 사퇴했다. 전대미문의 공영방송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영방송의 파업에 대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정치권력이 주도하는 파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경영진'을 구성하겠다는 정권의 하수인 역할이라는 반론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영 방송의 본질과 근간은 독립성과 공정성이다. 정치와 경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다양한 의견에 대한 공정한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진작시키고 국민의 권리를 충족시키며 공공의 가치를 지켜야하는 책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공영방송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와 시민은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공영방송의 파업은 큰 함의를 갖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적폐 청산의 목소리가 한창이다. 한 예로 경제 분야에서는 갑질 근절을 위한 정책 마련과 제도개선 그리고 강력한 법 집행 등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한다. 공영방송의 본령을 살리는 길 역시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것으로부터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잡을 수 있다. 공영방송의 본질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확보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배구조가 구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는 사장 선임과 해임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여야가 특정 비율로 추천하고 있다.

문제는 관례적으로 이뤄지는 여야 추천 비율은 여당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이러한 추천 비율이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공영방송 이사의 자격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지도 않다. 결과적으로 공영방송사의 사장은 가장 윗선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출발해서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공영방송사 이사회로 이어지는 수직적 체계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현 제도로는 공영방송사 사장과 이사진의 정치적 편향성을 막을 방법이 없다. 공영방송의 이사진 구성과 사장 선임은 정치성을 띌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크게 침해당했다.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정권 창출을 통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지배하려 할 뿐, 공영방송의 제도 개선에는 딴청만 피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영방송에 대한 역할을 이미 수차례 공언한바 있다. 8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언론자유지수가 민주정부 때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점과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져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또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정치적 목적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정권도 나쁘고, 또한 그렇게 장악당한 언론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태도가 야당의 주장처럼 공영방송에 개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선의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방송 90주년이면서 제54회 방송의 날을 맞이한 2017년이 공영방송 본령을 회복하는 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적폐 청산의 시작이자 끝일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잔혹사를 다룬 영화 '공범자들'이 약 18만여 명의 누적 관객 수를 보인 것은 꽤나 의미 있는 결과다. MBC 해직PD이자 현 독립언론사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히 제한된 상영조건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보인 것은 그만큼 많은 시민들이 그 뜻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한편, 8월 31일,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 고영주 이사장은 재판을 받았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며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이다. 그리고 방송의 날 기념식이 열리던 9월 1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법원으로부터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고용노동부의 소환 통보에 응하지 않은 혐의다. 2017년. 공영방송을 둘러싼 사람과 제도는 불안하지만, 공영방송의 역할은 분명하다. 공영방송은 독립성과 공정성을 단초로 하여 민주주의와 국민 권익을 굳건히 세울 수 있는 근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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