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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17) 공직후보자의 창조과학

과학의 이름으로 '창세 신화' 종교가치 훼손
검증·반증 불용… 국정·종교 구분 기대못해 

입력: 2017-09-05 18:00
[2017년 09월 06일자 14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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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17) 공직후보자의 창조과학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공직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개인의 종교 활동에 대해서는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 공직 후보자에게도 종교의 자유는 확실하게 보장해줘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진정한 과학인 진화론과 엉터리 과학의 탈을 씌워놓은 창조 신화를 혼동하는 공직 후보자라면 막중한 국정과 종교 활동을 분명하게 구분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창세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과학은 현대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정당한 과학 이론이 아니다. 과학계가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톨릭도 창조과학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세계관과 생명관을 충실하게 반영하지도 않은 창조과학이 과학의 이름을 빌어서 기독교적 창세 신화의 종교적 가치까지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생물의 진화까지 가능하게 해주는 요술방망이를 가진 마법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분명하게 밝힌 가톨릭의 공식 입장이다.

기독교에서 창세 신화의 의미는 분명하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창세 신화가 우리의 실제 현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이론이라고 우길 이유는 없다. 기독교의 창세 신화는 하느님이 천지창조에 버금갈 정도의 종교적 기적을 상징하는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은유로 이해해야 한다.

창세 신화가 기독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거의 모든 종교와 민족이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천지창조와 생명 탄생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불교나 힌두교처럼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세계관과 생명관을 설파하는 종교도 있다. 기독교의 창세 신화가 다른 종교의 창조 신화보다 더 우월하거나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기독교가 창세 신화에 대한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기독교의 창세 신화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유효한 것이지 현대 과학의 일부로 보편적 가치를 주장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분명하게 자리 잡은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려는 창조과학의 시도도 부질없는 것이다. 19세기의 단편적이고 제한적인 관찰에서 시작된 진화론이 화석학적 근거를 통해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의 진화론은 달라졌다. DNA를 기반으로 지금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더욱이 누구나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인정하는 분명한 과학 이론을 종교적 시각에서 검증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할 수도 없다.

창조과학을 과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는 진짜 심각한 이유는 창조과학의 내용이 아니라 방법론 때문이다. 종교적 교리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과학은 일체의 반론이나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검증과 반증을 용납하는 순간 창조과학은 기독교적 교리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고, 종교적 교리를 벗어난 창조과학은 존재 의미를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의 연구는 낡은 서지자료의 어설픈 분석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창조과학을 정당화시킨다는 명분 때문에 정직한 신앙인의 자세를 포기하는 모습도 안타깝다. 현대 과학기술계의 소통 수단인 학술회의와 학술논문의 겉모습을 흉내 낸다고 창조과학이 과학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에서도 인정하는 진화론을 폄하하고 훼손하는 것이 창조과학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알량한 장관직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해 종교적 소신까지 애써 부정하는 공직 후보자의 모습이 안쓰럽다. 옹색한 변명은 소신을 가지고 국정을 수행해야 할 고위 공직 후보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창조과학을 '연구'한 적이 없다는 주장은 아무도 납득할 수 없는 궤변이다.

사회 각계에 창조과학 신봉자를 배치해야 하고, 공학기술의 상업화를 통해 창조과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후보자의 과거 발언은 누가 봐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급진적인 것이고, '생활보수' 수준의 이념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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