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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우리 삶 속의 `악타이온 신화`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입력: 2017-08-31 18:00
[2017년 09월 01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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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우리 삶 속의 `악타이온 신화`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악타이온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사냥꾼이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들이 목욕을 하는 광경이었다. 악타이온의 눈길을 느낀 순간, 알몸의 여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도 그녀들은 한 여인의 몸을 감추기 위해 둘러섰다. 그런데 그녀들은 한갓 여인들이 아니었다. 한 가운데 서있는 이는 달의 여신, 사냥의 여신 디아나였고, 그녀를 둘러싼 이들은 요정이었다. 디아나는 악타이온을 괘씸하게 여겨 사슴으로 만들어 버렸다. 실수로 길을 잃었고 우연히 여신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그게 무슨 죄란 말인가? 그러나 사슴으로 변한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자 사슴의 울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그 자리를 피해 힘껏 달리자, 그를 발견한 사냥개들은 그것이 주인의 변신한 모습인줄도 모르고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사냥개들은 그가 사냥꾼이었을 때에는 충성스러운 종복이었지만, 사냥감이 되자 무자비한 승냥이에 불과했다.

이 이야기는 원래 그리스 신화였다. 그러나 실화의 한 상징이기도 했다. 그것은 로마의 공화정 체제가 무너지고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장악하며 로마 제국이 탄생할 즈음의 이야기다. 전제정치를 노골적으로 노린 최초의 인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그 전까지 로마는 독재를 막기 위해 2명의 집정관을 민회의 투표로 선출하는 공화정 체제였다. 집정관은 임기가 1년에 불과했고 서로를 견제했으며 원로원의 구속도 많이 받았다. 이런 권력 구도가 깨지는 경우는 국가에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뿐이었다. 두 사람의 집정관 중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여 6개월 동안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한 번 독재관이 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하지 않았다. 종신 독재관이 되겠노라 선포했다. 그의 야심은 공화정을 수호하려는 브루투스 일파의 칼 앞에서 파쇄 되었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로 유명한 암살에 의해 로마 공화정은 지속되는 듯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었던 아우구스투스는 황제에 등극했고, 마침내 절대적인 권력을 거머쥐고 로마 제국을 세웠다.

악타이온의 이야기는 바로 이 시절의 실화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주인공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였다. 그는 사랑을 노래하던 순진하고 재능 많은 시인이었다. 사랑이야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노래했다. 인생이 지루하고 따분한 것은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라며 사랑의 기술을 가르쳤다. 사랑(Amor)의 도시 로마(Roma),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에 몰입하고 열광했고 그의 시가 마치 삶의 진실을 밝히는 교훈이라도 되는 듯이 사랑에 몰두했다. 진실한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숭고하다며, 그는 그 어떤 사랑도 불량하지 않다고 예찬했다. 불륜? 사랑이 식었다면 관계도 끝나는 법. 그 관계 안에 사랑이 식어버린 이들을 계속 묶어두는 것이 오히려 못된 일이다. 불륜이란 특정한 관습과 법률에 의한 억지스러운 규정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로마제국을 경건하게 구축하려고 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오비디우스의 시가 몹시 불량해 보였다. 게다가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자유분방한 바람둥이 딸 율리아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보고 있었으며, 아우구스투스가 리비아와 재혼하는 과정이 어느 정도 부적절했음도 알고 있는 듯했다. 마치 디아나의 치부를 본 악타이온과 같다고나 할까? 아우구스투스는 그가 로마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순하고 위험한 시인이라고 정죄했고, 그를 로마판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게다가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 문제로 정치적 암투에 연루되어 역모에 가까운 일을 저질렀다는 죄목까지 뒤집어 씌웠다. 그는 결국 로마의 서쪽 변방, 흑해 연안으로 추방당했고, 죽을 때까지 로마로 복귀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가혹한 일이었다. 유배지에서 죽음을 예감한 그는 자신이 사슴으로 변해 사냥개들에게 물어 뜯겨 죽은 악타이온과 같은 존재라는 푸념과 회한의 글을 남겼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악타이온의 신화는 오비디우스의 실화를 비추는 상징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서 자주 보듯이, 어떤 이는 악타이온이고, 어떤 이는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만드는 디아나며, 어떤 이는 악타이온을 물어뜯는 사냥개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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