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디지털산책] 소셜 미디어와 사생활의 종말](http://contents.dt.co.kr/images/201708/2017082902102251607001[1].jpg "[디지털산책] 소셜 미디어와 사생활의 종말")
'해리포터'에서 당찬 소녀 헤르미온느 역으로 인기를 모았던 엠마 왓슨과 할리우드 대스타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최근 영화 '더 서클'은 SF나 스릴러로 분류돼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세계 최대 소셜 미디어 기업 '서클'이다. CEO 에이몬(톰 행크스)의 철학은 '아는 것은 힘이지만 모든 것을 아는 것은 훨씬 좋다'는 것이다. 선천성 뇌성마미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고 대리만족을 할 수 있듯이 지식과 정보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늘 주장한다. 한편 모두가 선망하는 신의 직장인 서클에 입사한 메이(엠마 왓슨)는 밤에 혼자 카약을 타다 조난을 당한다. 하지만 서클의 씨체인지 카메라로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네티즌들의 제보 덕분에 구조된 후 그녀는 CEO의 철학에 더욱 매료되었고, 급기야 자신의 일상을 씨체인지 카메라로 전부 공개하기에 이른다. 이후 예기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다. 씨체인지 프로그램은 소형카메라를 장착한 모든 이들의 사생활이 전세계 2억 명에게 생중계되는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다. 공개와 공유를 통해 비밀은 없어지지만 사생활도 함께 사라지는 세상이 된다. 서클 CEO는 씨체인지 프로그램에 접속된 모든 네티즌들의 일상을 감시하는 빅브라더 같은 존재다. 이 영화는 SF로 시작해 스릴러로 끝난다.
영화 '더 서클'이 그리고 있는 세상은 먼 미래가 아니다. 소셜 미디어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인스타그램, 텐센트웨이보, 스냅챗 등은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소통채널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실시간으로 지구촌 네티즌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고, 개인의 사소한 일상까지 생중계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는 기술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꺼림칙함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소셜 미디어가 주는 편리함에 대한 반대급부 때문이다. 바로 사생활의 위기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떠올리게 된다. 오웰이 그렸던 사회는 사생활을 감시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다. 정치 통제기구인 당은 빅 브라더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권력을 독점하고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당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더 서클'의 씨체인지 프로그램 역시 테크놀로지가 혁신적으로 진화했을 뿐, 크게 다를 바 없다. SNS는 다양한 의견이 교류되는 소통 공간이자 정보와 이슈가 넘쳐나는 보고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신상정보와 사생활이 해킹되고 노출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머지않아 사물인터넷이 집안곳곳에 설치되면 로봇청소기에 달린 카메라 해킹으로 사생활이 노출되는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이미 도시인은 CCTV에 하루 평균 83회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정보통신기술로 끊임없이 서로를 관찰하는 정보혁명은 정보노출을 통한 '사생활의 종말'에 다름 아니며, 현대사회는 푸코가 이야기한 격리사회를 넘어 들뢰즈가 언급한 통제사회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인류를 위협한 첫 번째 폭탄이 원자폭탄이었다면 두 번째 폭탄은 정보폭탄이라며 그 위험을 경고했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인들은 정보과잉과 실시간 공유라는 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원래 폭탄은 노벨이 광산이나 수로발파 등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전쟁 무기로 사용되었다. SNS나 CCTV 등 정보통신 미디어도 온라인 소통과 공유, 범죄예방 등의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프라이버시 침해와 해킹 등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에게 감시되고 사생활이 노출되는 삶을 살고 있다. 아마 영화 '더 서클'이 스릴러 영화로 분류된 이유일 것이다. 모름지기 문명의 이기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가치관에 따라 인간에게 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첨단정보사회의 명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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