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법률사무소 제이씨앤파트너스 변호사
![[DT광장] `알파고 판사시대` 가능할까](http://contents.dt.co.kr/images/201708/2017081602101951036001[1].jpg "[DT광장] `알파고 판사시대` 가능할까")
심심한 주말, '홀리데이'라는 오래된 영화를 봤다. 88올림픽이 개최됐던 1988년 10월 지강헌이라는 탈주범이 외치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은 30년이 지난 요즘에도 사법 불신을 상징하는 일종의 구호가 되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말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는 인터넷 메인화면에 떠 있는 기사만 클릭해보아도 불신에 가득한 댓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몇 년 전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국민들의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고작 15.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법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뜻이며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 즉 알파고로 대체돼야 할 직종으로 판사를 뽑는 목소리도 종종 들린다. 지난달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국내에서는 알파고 인공지능 의사가 실제 진료를 하고 있고 미국 로펌에서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변호사가 등장했다고 한다"면서 "사법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알파고 법관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의원도 있었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듯이 어쩌면 20년 후에는 알파고가 우리의 직업을 점차 대체해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알파고가 법관이 되어 판결을 내리게 된다면 어떨까. 다양한 서적과 판례를 빅데이터로 입력하고 학습한 알파고 판사가 하는 판단에 대해서 국민들은 적어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인맥 문제 등에 얽매여서 불공정한 재판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알파고 판사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또한 엄청난 업무량에 치여 실수를 할 위험도 없으며 기록을 수백번 검토해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 판사는 변론을 종결한 이후 선고 기일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필요한 정보들만을 신속하게 골라 신속한 판결을 내릴 것이다.
피고인의 장기 구금을 막을 수 있고 당사자들은 신속하게 재판 결과를 받아볼 수 있어 법적 안정성도 빠른 시간에 확보될 수 있게 된다. 인간이 판결을 내릴 때보다 알파고 판사는 오판의 가능성도 거의 없어 2심, 3심으로 올라가도 판결이 뒤집힐 확률이 거의 없다.
이렇게 공정한 재판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알파고 판사가 등장하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을 해본다. 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알파고 판사에게 재판받을 기회를 보장받는다면 국민의 헌법상 권리가 한층 더 두텁게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알파고 판사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어서 미래 언젠가 재판받을 당사자에게 '인간에게 재판을 받을 것인지', '알파고에게 재판을 받을 것인지'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대부분의 국민이 알파고 판사를 선택할 것일까. 그러나 결과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형사사건이든 민사사건이든 법정에 서게 된 당사자는 하고 싶은 하소연이 많다. 그러나 알파고가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이해해주고, 간곡하게 호소하는 감정에 공감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알파고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독립적으로 심판할 수는 있겠지만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같은 유형의 소송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관은 양 당사자가 제출하는 주장과 증거를 토대로 사실인정을 하며 인정된 사실을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 알파고는 인정된 사실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신속하고 객관적으로 산출해낼 수는 있지만,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사실 중 어떤 사실이 진실에 부합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능까지 할 수는 없다. 세상에 동일한 사건들이 존재하지 않기도 하고 사실인정을 하는 과정에는 수치화할 수 없는 수많은 '정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소연도 많고 사연 많은 당사자 말을 공감하며 들어줄 수 있는 역할도 알파고가 할 수 없다. 양 당사자들의 분쟁을 판결까지 가기 전에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도 판사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나 알파고에게는 이러한 중재자의 역할을 현명하게 해내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즉 재판은 인공지능 알파고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신속하게 수치화한다고 해 공정한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재판을 받을 당사자가 인간이 아닌 알파고 판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선택할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에도 이른 새벽 시간에도 늘 불이 켜진 법원 판사실들을 보면 지금 이 시간에도 법관 개개인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 조금이라도 공정한 재판을 내리고자 밤이고 낮이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봐 필요 이상으로 독야청청하며 청렴하고 결백하게 지내는 법관들도 많다. 국민들이 자기 자리에서 오늘도 피땀 흘리며 열심히 사는 것처럼, 법관들도 국민의 일부이고 우리들과 같이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늘도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기 위해 수백번 수천번 고심하고 있는 인간 판사들의 피와 땀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자. 우리 역시도 알파고보다는 인간에게 우리의 사연을 하소연하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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