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위기' 진행형… 설비예비율↓ 문제
전력수요·신재생 에너지 기술 재고해야
전력수요·신재생 에너지 기술 재고해야
![[이덕환의 과학세상] (614)전력 설비예비율](http://contents.dt.co.kr/images/201708/2017081602101176788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14)전력 설비예비율")
전력 설비예비율이 14년 만에 처음으로 34%를 넘어섰다고 한다. 적정 설비예비율을 22%에서 20%로 하향 조정하고, 내년의 최대수요(피크)도 당초 92GW에서 86.3GW로 낮춰 잡을 모양이다.
그런데 미래의 GDP 성장률이 설비예비율 산정의 핵심 지표이고, 전력 수요는 경기와 국민생활의 활기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자료다. 결국 설비예비율과 수요 예상치의 하향 조정은 국민 경제를 포기한다는 뜻인 셈이다. 과연 탈원전·탈석탄 공약이 국가 경제를 포기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올해 설비예비율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의 지속적인 투자 덕분에 작년부터 신고리 3호기와 신규 화력 발전소 15기가 추가로 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시켰지만 오히려 발전설비의 총규모는 작년보다 13GW나 늘어난 113GW가 됐다.
그런데도 2011년부터 시작된 전력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로 지난 7월 5일과 21일에는 발전소의 고장과 전력 소비 급등이 겹쳐지면서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 전국 2500여 개 공장에 갑자기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급전지시'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대선공약의 압력에 짓눌려버린 산업부가 그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설비예비율이 높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설비예비율은 1998년에도 31.1%를 기록했고, 2003년에도 30.3%였다. 안심했던 정부는 전력산업을 개편하고, 소극적인 소비 전망을 앞세워 설비투자를 최대한 줄였다.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2011년 순환정전 이후 매년 산업계의 조업 단축에 의존해서 위기를 넘겼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정부는 매년 수천억의 보조금을 쏟아 부었고, 기업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올해도 그런 예산이 5800억원이나 잡혀 있다.
설비예비율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38%이고, 일본은 98%나 된다. 독일은 무려 131%나 된다. 우리의 설비예비율이 낮은 것은 연평균 가동률이 높은 원전(77.5%)과 석탄화력(71.5%)의 비중이 충분히 컸기 때문이다. 가동률이 낮은 태양광(12%)이나 풍력(18%)의 비중이 커지면 예비율도 높아져야만 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는 상당한 규모의 예비전력도 필요하다. 소비하지도 못할 예비전력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무작정 줄일 수는 없다. 갑자기 전력 수요가 늘어나 버리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전력 생산을 시작하려면 몇 시간에 걸친 예열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발전설비에 과부하가 걸리고 자칫하면 송전망 전체가 무너지는 대정전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예비전력이 5GW 이하가 되면 비상이 걸리고, 1GW 이하가 되면 강제적인 순환정전을 실시해야만 한다. 2011년 9월에 뼈아프게 경험했던 일이다.
앞으로 전기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전력 수급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신재생 전문가인 산업부 장관의 위험한 궤변이다. 우리의 에너지 현실을 자원이 넘쳐나는 미국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신재생 기술력을 갖춘 독일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우리에게 전력의 소비 감소는 곧바로 심각한 조업 단축과 경기 침체를 뜻한다.
미국의 신재생 단가가 충분히 내려갈 것이라는 분석도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다. 우리의 신재생 기술은 미국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의 평균 일사량은 제곱미터당 995kWh로 미국의 68% 수준이다. 신재생에 필요한 부지의 확보에도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설사 기술 수준이 같더라도 우리의 신재생 발전단가는 미국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최대 전력수요에 대한 산업부의 몰이해도 걱정스럽다. 작년 여름의 최대수요는 전년 여름보다 8.3GW나 늘어난 85.2GW였다. 내년의 최대수요가 86.3GW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은 누가 봐도 억지다. 급전지시로 최대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산업부의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새 정부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현실적인 국가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