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낭독기 사용시 다음 링크들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즐겨찾기 문화일보 PDF

암울한 시대의 위로… 광복군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EBS 15일 '노래로 조국광복…' 

김지영 기자 kiy@dt.co.kr | 입력: 2017-08-13 18:00
[2017년 08월 14일자 16면 기사]

원본사이즈   확대축소   인쇄하기메일보내기         트위터로전송 페이스북으로전송 구글로전송
암울한 시대의 위로… 광복군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EBS 1TV 광복절 특집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 2부. EBS 제공



◇EBS 1TV 광복절 특집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 2부]-8월15일 밤9시 50분

일제강점기 민족의 독립을 노래했던 '항일음악'을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 노래를 만든 사람과 노래 속 사건을 통해 시대의 슬픔을 추모한다. 더불어 어린이, 청소년 합창단과 함께 옛 곡을 재해석해 불러보며 당시의 노래를 재연한다.

투쟁의 노래… 중원에서 기다린 독립

항일음악은 암울한 시대에 굴하지 않고 조국과 민족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불렀던 투쟁의 노래였다. 잊지 말아야 할 항일의 역사가 그 옛날의 선율 속에 빛바랜 채 간직돼 있다. 조국 광복을 염원하며 일본과 무장 투쟁을 했던 독립군들은 주로 중국에서 활동했다. 특히 조선의용대의 활동은 중국인들에게도 인상적인 항일투쟁이었다. 1938년에 창설된 조선의용대에는 단체의 정신적 지주 '윤세주'라는 인물이 숨어 있다. 윤세주는 군사들의 사기 진전을 위해 폴란드의 민중가요 '바르샤바 노동자의 노래'를 편곡해 가사를 새로 붙여 '최후의 결전'이란 곡을 만들었다. 조선의용대의 노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중국 화북지대를 가르는 타이항 산맥 자락 연화산 중턱에 윤세주의 묘가 안장돼있다. 조국을 향해 달려가는 원대한 꿈을 품고 타이항산에 첫발을 내디딘 조선의용군과 윤세주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윤세주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타이항산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광복 후 한형석은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조용히 타계했다. 산동네 낡은 집에는 그가 남기고 간 인생의 스크랩북이 있다. 한민족의 항일 역사는 과연 스크랩북의 사진들처럼 빛바랜 것일까?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 부산에 정착한 광복군 한형석의 광복군가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는지 2부에서 소개된다.

김지영기자 kjy@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선풀달기 운동본부
연예 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