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소설 같은 미래기술 '시대착오'
과학이론 자의적 해석·왜곡 경계해야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과학이론 자의적 해석·왜곡 경계해야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이덕환의 과학세상] (612) 미래학 전성시대](http://contents.dt.co.kr/images/201708/2017080202101476788002[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12) 미래학 전성시대")
화려한 수사를 앞세운 미래학자들이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언론사·기업·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을 모셔와 현란한 말잔치를 벌이고 있다. 학생들에게 미래학을 가르치는 대학도 있다. 심지어 대법원도 미래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미래학에게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새 정부도 미래학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래학 전문가들이 여전히 새 정부를 기웃거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미래학'을 소개해준 것은 '제3의 물결'(1980)로 알려진 엘빈 토플러였다. 농업혁명과 산업화의 물결에 이어 정보통신에 의한 제3의 물결에 시작되고 있다는 토플러의 예언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토플러가 우리에게도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었다. 낡은 산업화 시대의 경제발전 모델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창조적인 지식기반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2001년 토플러가 우리에게 제시해준 '21세기 한국비전'의 핵심이었다. 그동안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지식경제'와 '창조경제'가 사실은 토플러가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였던 셈이다.
그런 토플러가 작년 86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미래학에도 백가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제레미 리프킨, 레이 커즈와일, 제롬 글랜, 존 클리핑거를 비롯한 세계적 미래학자들이 뻔질나게 우리나라를 드나들고 있다. ICT 기술 분야의 첨단 기술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융합'과 '창조'를 강조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유교와 삼강오륜이 미래의 나침반이라고 주장하는 독특한 미래학자도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 사회를 바닥부터 뒤집어놓은 독일의 클라우스 슈밥도 미래학의 대가다. 경영학과 공학을 전공하고 제네바대학의 경영학과 교수였던 슈밥은 약관 31세 때부터 스스로 조직해서 운영해왔던 세계경제포럼(WEF)을 발판으로 지속가능 개발과 평화 등의 세계적 이슈에 참여해왔다. 그런 슈밥이 작년 1월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I(사물인터넷)·C(클라우드 컴퓨팅)·B(빅데이터)·M(모바일)과 가상현실·로봇·드론·3프린팅 등 모든 첨단 기술이 융합된 4차 산업혁명을 외치기 시작했다. 새 정부도 이미 자율주행 자동차를 우리의 가장 중요한 미래 먹거리로 채택했고, 앞으로 총리급의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미래의 사회상과 세계관을 전망하는 '미래학'(futurology)과 '미래학자'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미래학'의 영역이 분명하게 정의되는 것도 아니고, 미래학적 연구방법론이 구체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엄격한 연구방법론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미래학자는 찾아볼 수 없다. 단순히 기술을 들먹인다는 이유만으로 미래학을 '과학'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대학에서 그런 미래학을 가르치는 것은 점성술과 신비술을 가르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정체조차 분명하지 않은 미래학은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맹목적인 시행착오로 기술을 개발하던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다. 확실한 현대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애써 노력을 해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고 힘든 것이 현대의 기술 개발이다. 미래학자들이 앞세우는 공상과학소설 수준의 미래 기술과 사회상을 우리가 실제로 직면하게 될 현실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엄격한 과학 이론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무책임한 자의적 해석과 왜곡도 경계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삶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설픈 미래학에서 위안을 찾겠다는 생각은 공허한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환경은 신비적인 미래학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에 대한 이해와 기술에 대한 수용성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기술 정책은 반드시 과학기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만 한다. 어렵게 탄생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미래학과 엉터리 유사 과학의 유혹에 빠져버리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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