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방송계의 제왕 `PD`의 추락](http://contents.dt.co.kr/images/201707/20170720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방송계의 제왕 `PD`의 추락")
오랜만에 함께 일하던 선배 동료들을 반갑게 만났다. '대장금'의 이병훈, '인간시대'의 이긍희와 윤동혁, '사랑이 뭐길래'의 박철, '조선왕조 500년'의 유흥렬, '수사반장'의 이연헌 등 한 때 이름을 날리던 PD들이 한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 김수현, 윤대성 그리고 최불암, 김혜자, 정혜선, 김용림 등 대스타들도 자리를 빛냈다. '동토의 왕국',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를 만든 김종학PD는 유명(幽明)을 달리해 이 값진 자리에 나타나지 못했다. '드라마 왕국:TV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북 콘서트 덕에 TV를 움직이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필자는 MBC텔레비전 PD1기 출신이다).
MBC가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던 1970년, 80년대 제작을 총괄 지휘했던 민용기(閔龍基) 전 제작이사가 직접 겪은 현장의 사례를 실감나게 기록한 책이 바로 '드라마 왕국:TV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스타북스에서 출간한 이 책에는 '여명의 눈동자', '사랑이 뭐길래', '제1공화국', '조선왕조 500년', '야망의 25시', '땅' 등 당대의 명작 드라마 제작에 얽힌 이야기와 김종학, 이병훈, 고석만, 이연헌, 유흥렬, 정문수, 박철, 윤동혁 등 왕년의 거물PD들과 김수현, 김기팔, 신봉승 등 거장작가들의 비화도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은 역대 MBC사장을 역임한 최창봉, 이진희, 이웅희 등 경영진의 방송철학도 살펴보고 있으며, 공안정국의 암울했던 시절 문공부와 청와대가 방송사 인사에 어떻게 관여했으며 프로그램 편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방송은 직업의 백화점이다. 각종의 전문직과 기능인들이 어울려 함께 일하고 있다. PD, 기자, 아나운서뿐 아니라 경영관리직, 광고판매직, 그리고 디자이너, 목수 등 방송사 안에는 별별 직업이 다 있다. 방송가에는 'PD가 왕이다'라는 말이 있다. "영화가 감독의 매체이고 연극이 배우의 매체라고 한다면 방송은 PD의 매체다." PD 한 사람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맡은 PD의 혼과 열정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모든 프로그램은 협업(協業)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휘하고 조직해서 메시지를 영상화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모든 책임은 PD에게 있다. 프로그램은 어느 PD가 맡느냐에 따라 성패(成敗)가 갈린다.
이렇게 중요한 PD가 미국이나 영국 방송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에 따라서, 방송사의 규모에 따라서 방송사의 조직과 직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초창기 직분은 세분화돼 있지 않았다. 편성시간도 제한돼 있고 제작비도 여유가 없던 시절이라 1인 다역이 많았다. 1970년대 다큐멘터리 프로를 만들면 PD혼자서 기획하고 섭외하고 현장 취재하고 편집하고 심지어 너레이션 원고도 직접 쓰고… AD조차 없었다. 타이틀을 '기획, 제작, 연출 김XX'라고 내보내는 예도 있었다. 점차 방송사 경영상태가 나아지고 시청률 경쟁이 심화되자 프로그램을 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생겼다. 이 결과 PD의 역할이 세분화됐다. 칩 프로듀서가 생기고 책임프로듀서라는 직책도 생겼고 프로듀서와 디렉터가 분리되고 섭외담당자(call boy)와 작가(scripter), 리포터 그리고 외주업체도 많이 등장했다.
PD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방송용어다. 어떤 이는 프로듀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연출가라고 부른다. 어쨌든 라디오, TV, 케이블 등 단위 프로그램의 제작 연출을 맡고 있는 이를 PD라고 부른다. 콩글리시 'PD'는 어디서 왔는가? 1)기획과 연출을 담당하고 있으니 Planning Director를 줄여서 PD가 됐다는 설이 있다. 가장 고전적 주장이다. 2)프로그램을 만드니까 Program Director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편성국장을 뜻한다. 3)어떤 학자는 Producing Director의 약자를 고집한다. 거짓이다. 4)PD는 그냥 Producer의 약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프로듀서 안에 P와 D가 들어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편다. 그럴법하지만 참은 아니다. 5)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PD는 Producer-Director의 약자라는 해석이다. 제작자 겸 연출자란 의미다. 정설일 것이다.
방송사가 늘어나면서 '날림공사'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쓰레기(trash) TV'라는 말이 있다. 가십, 스캔들, 치정, 살인, 엽기, 수다, 놀이 따위를 다루는 값싼 프로그램을 '태블로이드TV'라고도 칭한다. PD들은 문화의 중개자라는 직업적 긍지를 갖고 국민 정신을 고양(高揚)시키는데 보다 힘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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