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청문회 뜬금없는 '진화론' 공방
후보자 애매모호 답변 논란 부추겨
후보자 애매모호 답변 논란 부추겨
![[이덕환의 과학세상] (609) 진화론과 미래학](http://contents.dt.co.kr/images/201707/2017071202101276650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09) 진화론과 미래학")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뜬금없이 진화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최고의 ICT 전문가로 발탁했다는 미래부 장관 후보자가 진화론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거부한 것이 발단이었다. '여러 의견'이 있는 진화론에 대해 장관 후보자가 발언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우긴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논란은 마무리된 모양이지만 과학기술계의 입장이 난감하다.
진화론에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1859년 영국의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제시한 진화론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지구상의 수없이 다양한 생물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돌연변이의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다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현대 생명과학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는 과학적 사실이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진화론도 끊임없이 진화해온 것은 사실이다. 화석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논증의 방법도 크게 확대되었다. 그렇다고 진화론의 핵심 명제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화론의 구체적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고, 정교하게 다듬어졌을 뿐이다. 심지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황청 과학위원회의 검토를 통해 현대 진화론과 빅뱅 이론의 과학적 가치를 인정했다.
현대의 모든 과학 이론은 새로운 과학적 근거와 이론에 의해 언제든지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도 과학 이론을 철학적 의미의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진화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화론에 따라 번성하고 있는 지구상의 생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외계생명체의 존재가 밝혀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구상의 생물에게 적용되는 진화론이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진화론'이라는 이름에 대한 시비도 무망한 것이다. 아무도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을 문제 삼지 않는다. 'cosmology'(우주학)를 '우주론'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진화론을 물리학 이론처럼 단순명쾌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개념의 정의도 애매하고, 논리의 전개가 어설플 수도 있다. 수학을 이용해서 오해의 가능성을 줄이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진화론을 '진화학'으로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과학 이론에 붙여진 이름은 과학의 본질과 상관없는 관행일 뿐이다.
진화론과 기독교적 창조론 중 어느 것을 믿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과학 이론과 종교적 신념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생물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적 진화론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창세기의 기독교적 해석과 충돌할 이유도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분명하게 강조해서 밝혀준 사실이다. 하느님이 생물의 진화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요술 방망이를 손에 든 마법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계가 미래부 장관 후보자의 과학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걱정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게 될 후보자에게 과학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 요구를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에 비유해서는 안 된다. 물론 과학기술계가 장관 후보자의 종교적 신념에 관여할 이유는 없다.
과학기술계의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니다. 2012년 교과부가 일부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어설프게 처리해서 국제적으로 곤욕을 치른 아픈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의 혼란을 틈타 2007년에 등장했던 제로존의 망령도 여전히 되살아날 기회를 엿보면서 꿈틀거리고 있다. 정체불명의 '통일' 이론을 앞세운 재야 과학자들의 위험한 주장이 일부 몰지각한 정치권의 힘을 빌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질문(목적)만 좋으면 내용(과정)은 상관없다는 허황된 주장과 어설픈 '미래학'을 핑계로 비과학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정확한 정체도 알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경계해야 한다. 합리적 이성을 부정하는 비과학이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론이고 진정한 법치와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이론도 확실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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