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한국인의 `커피 믹스` 예찬](http://contents.dt.co.kr/images/201707/2017070602102251607002[1].jpg "[뉴스와 콩글리시] 한국인의 `커피 믹스` 예찬")
지난 5월19일은 발명의 날이었다. 특허청이 발명의날 52주년을 맞아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빛낸 발명품 10선'을 조사한 결과, 최고의 발명품으로 훈민정음이 뽑혔다. 아무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5위가 커피믹스였다. 의외였다. 온 국민이 카페인에 중독돼 가고 있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정부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자주 찾는 상가의 1층은 한 두 곳 빼고 전부 커피와 음료를 파는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 달콤커피, 이디야, 크리스피크림 도넛, 할리스 등 대형 커피 전문점 외에도 빽다방, 곰브라더스, 디저트39 등 중소형 가맹점에, 브랜드 없이 운영하는 소규모 자영업 카페까지 줄잡아 20여 곳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서울신문, 2017. 4. 10).
통계청의 '우리동네 생활업종'을 보면 전국카페 사업체 수는 대표적인 생활업종 15개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 베이커리와 디저트 전문점을 포함하면 실제로 영업 중인 커피숍은 전국에 1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커피전문점의 연간 매출이 5조원대를 넘어섰다. 재벌그룹이 운영하는 대형 체인점의 매출은 크게 늘고, 토종 브랜드 등 일부 전문점은 경영위기를 맞고 있어서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스타벅스는 지난해 커피점 최초로 매출 1조클럽에 올랐다. CJ그룹이 운영하는 투썸플레이스도 지난해 두자릿 수 상승을 기록, 매출이 2000억을 넘어섰다. 그 뒤를 이디야, 커피빈, 앤젤리너스, 탐앤탐스가 잇고 있다.
한 해 우리들은 얼마나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원두 수입량을 기준으로 커피소비량을 분석해 보니 지난해 한국인이 마신 커피는 1인당 377잔에 이른다(어떤 통계는 500잔으로 나와 있다). '다방커피', '국민커피'로 사랑받는 커피믹스 시장은 쪼그라들고, 원두커피 시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2012년 1조2389억원에 달했던 커피믹스 시장 규모는 4년 연속 하락해 9107억원 수준으로 떨어졌고 원두커피 시장은 지난해 1627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18.4%가 늘어났다.
커피믹스(coffee mix)란 무엇인가?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그리고 크리머 등을 섞어서 1회분씩 포장해 놓은 제품이다. 1976년 동서식품이 출시한 맥심이 효시다. 값싸고 편리하고, 어디든 지참하기 좋은 커피믹스가 대중적 인기를 끌자 경쟁사들이 비슷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한국의 커피믹스는 중국 등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되고 미국과 유럽의 우리교민들도 찾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아울(Owl)이라는 유사 제품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 커피믹스는 아예 없다. 커피에 설탕 먼저 넣는게 좋으냐, 우유 먼저 넣는게 좋으냐 아직도 논쟁을 벌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를 즐기고 있는 나라에서 아무리 '황금비율'이라지만 '봉지커피'는 상상조차 힘들다. 영국인들과 아랍인들에게 커피믹스를 마시게 한 뒤 품평을 들어본 유튜브가 있다. "아기 분유 맛이다", "핫초컬릿 같다", "너무 달다" 등 대부분 부정적 반응이었다.
커피믹스(coffee mix)는 맞는 영어일까? '믹스커피(mix coffee)'라고 해야 한다. Korean mix coffee라고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이런 봉지커피(packaged coffee)는 서양에는 없다. 6.25동란 때 MRE(meal ready to eat, 전투식량)속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처음 발견하고 "이건 어디 쓰는 물건인고?" 동네방네 수소문했다. 한 식자(識者)로부터 커피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동네 아이들은 대접에 이를 풀고 사카린이나 당원을 타서 꿀꺽꿀꺽 마시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 시절 설탕은 귀한 식품이고 단맛은 쓴 커피를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60년 70년대에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시키면(아침에 마신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커피 속에 계란 노른자가 들어 있었다. "난 계란 빼고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레지(옛날 찻집 종업원을 lady의 일본식 발음으로 불렀다)는 주방을 향해서 "모닝 빼고 하나요!" 소리를 질렀다 (아마 이 때만 해도 커피가 위장을 버린다고 하여 계란으로 보양코자 했던 것 같다).
커피믹스와 비슷한 말로 캔커피(can coffee)가 있다. 편의점과 가판대 천국인 일본에서 깡통커피가 처음 출시된 것은 1965년이었다. 영어로는 '캔드 커피(canned coffee)'라고 말해야 한다. 커피 취향이 고급화하고 진정한 커피 애호가들이 늘어나면 믹스커피와 캔드커피는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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