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시론] 노조-기업-나라 모두가 사는 길](http://contents.dt.co.kr/images/201707/2017070502102351607001[1].jpg "[시론] 노조-기업-나라 모두가 사는 길")
최저임금 1만원과 기타 요구 사항을 얻어 내려는 민주노총의 장외 집회가 시작되었다. 촛불 명세서를 든 그들은 우리 덕에 생겨난 정부니 우리 몫을 내놓으라고 새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 뜨거웠던 촛불이 과연 어느 특정집단의 전리품으로 전락해야 하는지도 매우 의문이지만, 민주노총의 이런 요구가 일자리 창출을 화두로 삼고 있는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4년 전에 폭스바겐과 그곳에 철판을 공급하는 협력사인 아세메탈 노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두 곳에서 노조 대표는 똑같이 "우리 폭스바겐이," "우리 아세메탈이" "잘 돼야 합니다"로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적 투쟁노조에 익숙한 우리 관점에서는 의외였다.
그러나 두 회사의 노조 대표가 우리 연구진에게 각자 자신의 회사 잘 돼야 한다고 한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첫째, 뭐니 뭐니해도 우선 회사가 잘 돼야, 근로자 자신들의 일자리가 유지되고, 나중 연금도 받을 수 있고, 이 지역의 교육·지방자치 등이 생존할 수 있으며, 내 아버지가 여기 살았듯이 나도, 내 자식도 여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독일의 16개 연방주의 정치체제 속에서 노조는 각 소속 기업들과 정기적으로 노사협의회를 갖고, 그 기업의 발전뿐 아니라, 그 지역 중고등학교 직업학교 교육 시스템과 연계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공동의 교육적 책임도 지고 있다. 노조가 지역 일자리 창출과 교육에까지 건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독일도 통독 이후에 우리처럼 일자리 문제로 고통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이때 높은 실업으로 유럽의 병자로 취급되던 독일을 재건하기 위한 '어젠더 2010'의 개혁 핵심 중 하나가 노동개혁이었다. 이를 담당한 헤르츠 위원은 "독일 경제가 되살아나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노조가 동참함으로써 노동개혁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의 20~29세 청년 경제활동인구는 2000년 485만4000명에서 2016년 415만3000명으로 감소했지만 청년실업률은 7.5%에서 9.8%로 증가한 상황이다. 청년실업이 이처럼 심각한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제일 처음 새로 시작한 정부 조직이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 위원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 고용창출 능력이 가장 높은 산업현장을 지배하는 민주노총 및 한국노총은 새 정부가 그토록 절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 자신들도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알기로, 고용창출 가능성 및 생산성이 높은 독일 사업장에 한국의 노동조합, 노사전문가들이 이미 10~15년 전에 많이들 다녀왔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적으로 자기들의 권리에 대한 부분만 선진국에서 배워서 주장하고, 사회적, 경제적 책임 부분은 외면한다면 그 회사, 그 국가가 발달할 수 있겠는가?
새 정부의 일자리위원회는 독일의 헤르츠 개혁이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돼 성공시킨 네 가지 요소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슈뢰더 총리의 강한 의지와 용기, 둘째 높은 실업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공감대, 셋째 실행 책임을 가진 주체의 즉각적인 책무수행, 넷째 슈뢰더 이후 메르켈 정부로의 정당교체에도 중단없이 지속된 개혁의 흐름 등이 그것이다. 새정부의 일자리 창출 위원회가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용기를 통해 사회적 인식의 공감대를 창출해야 하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한국경제를 위해 계속될 수 있는 개혁안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높은 청년 실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그 실행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근로자들은 물론 해고의 위험, 미흡한 사회안전망, 노후불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68%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노조가 오히려 앞장서서 "우리 현대차·기아차, LG, SK, 삼성, CJ, 동원, 롯데, 우리 포스코가 잘 돼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실제로 그에 앞장서면 어떨까? 이미 민주노총 투쟁 사업장의 상징이었던 쌍용자동차의 생산라인에 근로자들이 "우리 회사 제품의 성공이 회사의 성공이고 나의 성공이다"라고 걸어놓은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기업이 살아야, 자신들도 살고, 일자리도 창출되고, 나라도 산다는 그 기본을 노조가 확실히 한다면, 사측과 정치권도 발 벗고 나서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는 근로자들의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전환기에 노조도 자신들의 이익만 고집하는 과거 30년의 관행을 버리고 사회적·경제적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해야,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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