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시론] 문재인정부가 `시장`을 이기려면](http://contents.dt.co.kr/images/201706/2017062102102351607002[1].jpg "[시론] 문재인정부가 `시장`을 이기려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면 늘 새로운 정책들이 쏟아진다. 역대 정부치고 출범시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지 않은 정부는 없다. 문제는 그러한 정책들이 선거 국면에서 충분한 검증 없이 인기영합적으로 양산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양산된 정책들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오작동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환경을 개선하려는 정책이 환경을 파괴하거나,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정책이 빈부격차를 오히려 확대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 세상에 정책이 오작동되기를 바라는 정권은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릇된 정책보다 오작동되는 정책이 훨씬 많이 관찰된다. 예컨대 정부가 부동산 억제정책을 만지작거리면 집값이 더 오른다. 국민이 그것을 집값상승의 신호탄으로 보기 때문이다. 집값상승요인이 시장에 축적돼 있다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니 집값이 안 오르면 이상하다. 그 결과 억제정책이 잠시 틈을 보이는 순간 시장 내에 누적된 상승압력은 실제 집값을 대폭 끌어 올린다.
글로벌 시장에서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이론적으로 보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상하면 국내에 투자된 해외자금이 빠져 나가므로 국내 주식시장은 하락해야 맞다. 그런데 시장은 실제 금리에 반응하기 보다는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예고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결과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고될 때에는 국내 주식시장이 떨어지나, 실제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국내 주식시장은 올라간다.
이렇게 시장이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의 예상과는 다르게 오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업, 투자자, 소비자 등 시장참여자가 정책자체보다도 정책의 변화가능성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정책은 균형상태를 가정해 만들어지나 시장은 불균형 상태가 가져다 줄 차익거래(arbitrage)의 기회에 주목한다. 정부는 단발성 부동산 억제정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나, 시장은 그 정책이 다시 완화될 시기에 나타날 수익창출의 기회에 대비한다.
정부와 시장간의 게임에서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시간이라는 밧줄에 팔다리가 묶인 선수가 어떻게 팔다리가 자유로운 선수를 이기겠는가. 정부가 대통령 재임기간 5년 동안의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한, 10년이든 20년이든 얼마든지 참고 버틸 수 있는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까지는 없다. 정부가 시장을 이길 묘책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의 우리나라 영화시장과 가요시장을 돌이켜 보자. 정부는 이들이 시장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정부개입은 차치하고 관심조차 두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 시장에서는 치열한 자생적 경쟁구조가 뿌리를 내려 이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케이팝(k-pop)산업을 잉태시키기에 이르렀다. 1995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약 10년간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도 비슷했다. 정부가 주도권을 시장에 맡겨 두어 시장을 이긴 사례이다. 정부가 마음만 비우면 얼마든지 가능한 묘책이다.
한편 조금 어렵지만 다른 묘책도 있다. 정부가 스스로 시장보다 더 나은 지혜로 무장하는 것이다. 1999년 노동당의 집권과 함께 출범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정부는 이른바 '정부 현대화 (modernizing government)'의 기치 아래 이제까지의 '이념중심 정책'을 버리고 '증거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을 택했다. 정확한 통계 데이터와 증거를 기반으로 정책효과를 추적하고 예측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정책의 초점이 '단기적 대증요법'에서 '장기적 원인치료'쪽으로 확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늦었지만 우리도 그 연구기반만 잘 갖추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묘책이다.
조급한 시장개입은 예외없이 부작용을 일으킨다. 재벌 규제, 일자리 창출, 통신비 인하 등 단기 정책성과에 조급해 하면 할수록 정책 오작동의 가능성도 커진다. 실증과학기반의 정책검증 기구를 설치하는 등 '증거기반 정책'을 지원하는 법제도를 마련하고 중장기 전략계획을 착실히 실행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시장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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