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철 농정연구센터 소장
![[새정부 이렇게 혁신하라] `농민의 농업` 아닌 `국민의 농업` 키워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706/2017061302102251788001[1].jpg "[새정부 이렇게 혁신하라] `농민의 농업` 아닌 `국민의 농업` 키워라")
지난 시절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자연과 사회적 약자의 끊임없는 파괴와 희생으로 일궈졌다.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농업과 농촌의 압축쇠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나라 가운데 이토록 농촌이 황폐하고 농민의 삶이 고단한 곳도 없다. 절망적인 농업·농촌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농사 경시, 무엇보다 분별없는 역대 정부의 잘못된 농정 탓이다. '돈 버는 농업', '창조농업' 같은 허언으로 농민과 국민을 호도하고 사실상 무관심, 무책임, 무대책으로 일관한 이명박 박근혜 10년 농정의 필연적 귀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27일 농정 공약을 직접 발표하는 자리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약속했다. 더 이상 농민을 방치하지 않겠노라고,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챙기고, 무엇보다 국가 농정의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며 개혁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농정 철학과 기조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다. 농업·농촌의 위기는 경쟁과 효율만 내세워온 잘못된 농정 이념 때문이라고 역대 정부와 선을 분명히 긋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새로운 농정 비전으로 제시했다. 개발연대 이래 지속된 성장 지상주의를 버리고 경제효율·사회형평·환경보전의 조화로운 발전을 지향하는 지속가능 농정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가히 한국 농업의 경로 전환 선언으로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하지만 선언을 넘어 구체적 정책 로드맵으로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하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뿌리박힌 낡은 이념과 관성을 벗어나야 하는 난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농업이 하는 역할, 농업을 보는 관점을 다시 정의하고 농업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찾는 일이다. 무엇보다 농업을 바라보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 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국가기간산업이니 당연히 보호해야 마땅하다고 주장만 하는 농업관계자들의 농업예외주의,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하는 애물단지일 뿐이라는 재계와 예산당국의 인식 모두 일면적이고 극단적인 단견이다. 그렇게 농업계와 비농업계로 편을 가른 채 수십 년 동안 대립 갈등이 되풀이되는 사이에 농업은 국민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고 농정은 제대로 된 비전과 전략 없이 정치적 고려에 휘둘리면서 망가졌다.
이제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농업·농촌은 국민이 필요로 하는 먹거리 생산 이외에도 환경·생태·경관·문화·교육·지역사회 유지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여러 편익을 제공하는 '사회공통자본'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농업은 다기능성으로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고 사회는 그 역할에 대가를 지불해 보답하도록 하는 것이 지속가능 농정의 근본이다. 새 정부에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농업은 단지 어려움에 처한 농민을 보듬어 주는 차원의 '농민의 농업'을 넘어 국민의 삶의질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다기능성을 진작하는 '국민의 농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꼭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중앙정부 주도의 파행적 농정운용시스템이다. 한국농업의 근대화를 주도한 것은 성장과 효율 논리로 무장한 중앙의 권력 엘리트들이었고, 강고한 중앙권력 시스템이 지방의 모든 주체들의 행태를 '중앙 바라기'로 고착화했다. 중앙정부는 정책의 기획, 예산배분, 집행에서 절대적 주도권을 쥐고 있다. 수백 가지나 되는 농림정책사업을 중앙정부가 설계하고 '콘테스트 방식'을 통해 지방에 자원을 내려보내고 있다. 이처럼 시대와 사회욕구의 변화, 농촌지역의 다양성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지방차원의 전략적 자원배분이나 미래를 향한 혁신활동을 기대하긴 어렵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 사람들이 서로 논의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자원을 나누는 농정분권이 미래농정의 핵심의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누가,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어갈까. 농정공약 1호로 내건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가 그 일을 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를 모아내고 미래농정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그 주된 임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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