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걸 동양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새정부 이렇게 혁신하라] 공공성 실현 과기정책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05/2017052402102251788001[1].jpg "[새정부 이렇게 혁신하라] 공공성 실현 과기정책 필요하다")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일 수도 있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과거의 방식이 미래에도 통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여전히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성장에 매달리고 있다. 성장은 알파요 오메가며 선택과 집중이 성장의 열쇠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하고 집중하는 성장 최우선의 과학기술정책은 불안한 의존과 불균형만 낳고 있다. 성장을 간절히 원했던 예전의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 선택한 소수를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독이 차면 물이 넘치고 그 물을 나눠 마시면 모두의 갈증이 해소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만 자꾸 커지고 물은 넘치지 않았다. 목마른 자는 여전히 목마르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국가연구개발비 지원금은 중소기업이 평균 3억2000만 원인데 대기업은 81억6000만 원으로 25배가 넘었다. 2009∼2013년간 국가 연구개발 지원금의 15.8%가 10대 대기업집단에 지원됐다. 대학에 지원한 국가연구개발비도 전체의 3%에 불과한 10개 대학이 52.2%나 차지했다. 대기업 편중 지원이 문제가 되자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떠들썩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 나가는 중견기업만 지원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왜 우리는 선택하고 집중하려 하는가.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성장에 꽂힌 대통령은 '대박' 과학기술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 임기에 맞춘 단기적 과학기술정책만 반복되는 한탕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단기에 큰 성과를 내려면 잠재력보다 지금 잘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돈 대는 정부가 돈 받는 기업에 매달리는 역전이 발생한다. 단기 성과를 원할수록 특정 기업, 대학, 산업에 더 의존하고 편중은 심화한다. 2017년 정부연구개발 예산은 19조4615억원으로 정부 총지출의 4.9%나 된다. 많은 투자에도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는 성장만 추구하는 선택과 집중이 합당한 기여를 못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민간의 연구개발을 촉진해야 한다. 그런데 하향식의 선택과 집중은 선택받지 못한 다수의 연구 의지를 약화하고 특정 분야만 커지는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런 불균형은 고스란히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또 지식생산의 다양성을 저해해 혁신을 가로막는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다수가 대기업이나 명문대학의 연구자가 아니라는 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은 불가능하다.
선택이 잘못됐을 때 대가는 혹독하다. 실패는 소수가 하지만 고통은 모두의 몫이다. 그래서 성장만 지향하고 소수에 의존하는 과학기술은 너무나 불안하고 부당하다.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과거의 방식은 과거에는 옳았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높이 날게 해주었던 밀랍 날개 때문에 깊은 바닷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던 이카로스처럼 성장에만 매달리는 선택과 집중은 우리를 추락시키고 있다. 과거의 성공 때문에 미래에 실패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덫에서 벗어나는 큰 전환과 작은 혁신이 모두 필요하다.
우선 성장을 넘어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목표로 설정하는 과학기술정책 목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성장의 동력이지만 성장이 과학기술정책의 궁극적 목표일 수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기술 지원의 궁극적 목표는 공공성 실현이다.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자와 기업의 것이라면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 발전이나 기업 성장을 위한 것이지만 공적 자금을 사용한다면 사회와 모두를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따라서 성장의 포기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목적 있는 성장을 지향하는 과학기술정책이 돼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선택하고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혁신주체가 작은 혁신을 시도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거대한 혁신은 작은 혁신이 모여 이뤄진다. 개방형 혁신이 대세가 된 이유도 혼자서 혁신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다양한 혁신주체가 시도하는 작은 혁신과 다양한 혁신주체가 협력하는 참여적 혁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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