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원 동국대 법과대학장
![[시론] 통합과 화합 리더십 보여달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705/2017051502102351607001[1].jpg "[시론] 통합과 화합 리더십 보여달라")
대한민국은 지난 수개월 동안 유례를 찾기 힘든 갈등과 혼란을 경험했다. 탄핵정국으로 촉발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세력은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벼락치기 대선기간에 갈등의 골은 깊고 넓어졌으며,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악이라는 편 가르기는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41.1%의 득표로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핵 도발의 야망을 버리지 않는 김정은 정권의 불장난으로 국가안보는 초위기 상황이고 자국 최우선 물결로 세계 경제상황 또한 최악이다. 이 힘든 상황에서 갈라선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묶어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대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 통합과 화합은 문대통령이 내걸었던 그 어떤 공약보다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통합과 화합은 대통령이 겸손하거나 친근하게 그리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여, 즉 열린 청와대나 낮은 경호철학처럼 외형적으로 탈권위적 행보를 한다고 하여 달성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것이 진정한 통합의 첩경이다.
그 중심에 먼저 통합의 이념이 있다. 통합의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라는 헌법 정체성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통치철학은 정권의 야망일 뿐으로 더 큰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지도자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도자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정체성을 밑바탕으로 미래비전을 제시해야한다. 그리고 신념에 찬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가 통합의 구심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행복은 국가나 대통령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모두를 포용하는 따뜻한 사회분위기와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만들고 찾아가게 하는 반듯한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가 돼야 한다. 행복의 기준은 개개인별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의 기반인 국가안보를 확실히 수호해야한다. 국가안보 쟁점은 이념이나 정치색과 무관한 대한민국 존립의 절대가치다. 그 중심에 한·미 동맹이 있다. 그런데 트럼프 시대의 한·미 동맹은 과거와 다르다. 전통적으로 한·미 동맹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와 국가 '이익' 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트럼프 시대에는 이익 측면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된다. 최대압박과 최대개입이라는 트럼프의 북핵 정책은 동북아 빅딜(Big Deal)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 정책에 대한 주도권 확보라는 추상적인 이념에 매몰됐다가는 통합과 화합의 밑바탕인 국가안보를 위기의 나락으로 내몰 것이 명백해 보인다. 대화가 타협이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약속도 가볍게 뒤집고 인권만행을 서슴지 않는 무도한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폐기돼야 할 존재임이 이미 입증됐다. 매수한 평화는 한시적이고 굴종적인 안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자주적으로 하겠다는 막연한 민족주의 구호 대신에 한·미 동맹을 확고히 구축한 전제 위에서 국제사회와 더불어 북핵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지속가능 복지의 기틀인 경제성장을 이뤄야한다. 해답은 기업인의 사기 고취와 기술혁신으로 해외시장 개척뿐이다. 명백히 문재인 정부는 진보·좌파정부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파정부는 성장정책을 좌파정부는 분배정책을 주로 써 왔다. 하지만 위대한 지도자들은 때때로 이념 지평을 뛰어넘는 정책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컨대 독일을 통일한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강성노조를 탄압했지만, 일반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연금복지제도의 기틀을 만들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성장률 2%, 국민소득 2만 달러 대에 머물러 있다. 후손들의 미래자산을 앞당겨 쓰지 않는 이상은 아무리 법인세를 많이 올린다고 해도 지속적인 복지정책은 불가능하다. 저성장을 탈출하고 지속적 복지국가로 이끌려면 신선한 정책 조합이 나와야 한다. 예컨대 좌파정부가 우파 정책을 채택하면 오히려 반대당의 협조도 쉽게 끌어내어 통합의 길로 내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통합과 화합은 이념 갈등의 극복에 달려있다. 지역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을 모두 관통하는 뿌리가 진보-보수, 좌파-우파라는 이념갈등이다. 대선기간 동안의 구호였던 적폐청산, 과거청산, 극우보수 궤멸 같은 뜬 구름 잡는 일에 매몰된다면 더 깊은 분열과 갈등의 회오리에 휩싸일 것이다. 적폐청산은 선거용 무기이지 국정을 이끄는 도구가 될 수는 없다.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고 전체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는 자리다. 문 대통령에게는 지지자보다 더 많은 반대자가 존재한다. 혼자서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은 버리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초심을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통합과 화합의 진정한 뿌리가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에 있음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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