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쉽렉` 세월호, 추모의 장으로](http://contents.dt.co.kr/images/201703/2017033002102269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쉽렉` 세월호, 추모의 장으로")
온 국민들이 애타게 3년이나 기다려온 통한(痛恨)의 세월호가 마침내 인양됐다. 사고로 인해, 또는 폭풍이나 암초에 걸려 침몰한 배를 난파선(shipwreck)이라고 한다. 이제 실종자를 수습하고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사고의 현장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어쩌다 추돌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견인 차량이 서너대씩 몰려 온다. 사고를 당해서 또는 고장으로 움직일 수 없는 차량을 수리 공장으로 끌고 가는 자동차를 '렉카', '렉카차'(중앙, 2014. 1. 8)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wreck car로 오해하고 있다. 부서진(wrecked) 자동차를 견인해 가는 차(car)가 렉카니까, 이 설명은 매우 그럴 법해 보인다.
그러나 wreck car라는 영어표현은 없다. 사고난 차를 이동하든가 불법주차한 자동차를 견인해가는 차는 '렉커(wrecker)'다. 파손된 차(wrecked car)나 주차금지 구역(no-parking zone)에서 차를 들어올리든가 끌고 갈 수 있는 장치를 갖춘 트럭이 렉커다. 끌고 가는 트럭(towaway truck)과 동의어인데 영국에서는 로리(lorry), 또는 모터 트럭(motor truck)이라고 말한다. 토우(tow)는 "자동차나 배 따위를 밧줄이나 쇠사슬 등으로 묶어서 끌고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외국에 가서 자동차 여행을 할 때 towaway zone(견인지역)표지가 있으면 주차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스는 섬의 나라다. 대략 6000여 개의 섬이 있다. 이 중 227개 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섬 가운데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섬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오니아 제도(諸島)의 자킨토스(Zakynthos)섬이다. 파트라에서 항구도시 킬리니(Killni)로 1시간 30분을 달려가서 다시 그곳에서 케팔로니아(Kefalonia) 페리를 타고 1시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섬에 도착하면 또다시 버스를 타고 섬을 가로질러 4, 50분 가면 조그만 포구(아기오스니콜라스)에 이른다. 여기서 또 고속 요트를 타고 30분쯤 가면 나바지오 해변(ParaliaNavagio)이 나타난다. 왜 많은 이들이 이런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 먼 곳까지 가고 있을까?(필자는 작년 10월 이곳을 다녀 왔다).
2016년 2월부터 인기리에 방송됐던 KBS의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때문이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찍은 송중기와 송혜교의 이른바 '송송 커플'의 러브신이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현장을 가보고 싶어 한다. 송중기가 송혜교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배경 화면으로 등장한 것이 자킨토스 섬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정작 해변에 도착해 보면 나바지오는 높은 바위 산을 깎아지른 듯한 사이에 디긋자모양의 작은 모래사장이다. 폭 120미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 편의 드라마가 남의 나라, 이름 모를 섬을 유명 관광지로 만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래나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이 특정 도시, 특정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준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콜로라도 달밤, 홍콩 아가씨는 오래 전부터 한국인 머리 속에 각인돼 있고 독일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는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화의 힘은경제를 주도한다.
나바지오 해변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깎아지른 바위 산 위에서젊은이들은번지점프와 같은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요트를 타고 갈 때의 뱃길이 수려한 미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들은 나바지오 모래사장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한 폐선(廢船)를 보기 위해서이곳에 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난파선은 녹슨 철골을 드러낸 채 아무 말이 없다. BBC는 이곳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선정한 바 있다. 이 폐선은 1980년 밀수품을 싣고 항해 하던 중 그리스 해군에 쫓겨 이곳에 난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어떤 이는 담배를 싣고 가던 배였는데 악천후로 암초에 좌초되어 침몰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나바지오 해변은 '난파선 만'이라 불리고 '밀수꾼 해변'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세월호 인양을 계기로 이 땅에 만연한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재난시스템을 확고히 해 나가야 하겠다. 사태의 수습이 일단락 되고 나면 'shipwreck' 세월호는 추모의 장(場)이자 국민교육의 현장으로 영구 보존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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