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탄소문화원장
![[시론] 급조된 `대선 캠프` 검증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03/2017032702102351607002[1].jpg "[시론] 급조된 `대선 캠프` 검증 필요하다")
우리가 직접 뽑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탄핵 소추하는 불행한 일이 13년 만에 다시 반복됐다. 결국에는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전직 대통령 7명 중 4명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하는 상황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 정말 이러려고 민주화를 이룩했는가 싶은 자괴감이 들 정도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은 제왕적 대통령과 후진적 정치만이 아니다. 대선 때마다 급조되는 대선 '캠프'의 문제도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어떠한 검증 절차도 없이 캠프에 비밀스럽게 참여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비선 실세들이 판을 치는 곳이 바로 급조되는 대선 캠프다. 캠프에서 내놓는 공약에 대한 검증이나 평가도 불가능하다. 대선이 끝나고 나면 뒷전에 숨어있던 비선 실세들이 커밍아웃을 해서 당당하게 핵심 측근으로 자리를 잡는다. 제왕적 대통령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실제로 급조된 캠프의 어설픈 공약이 국정을 혼란에 빠뜨려버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국의 하천을 녹조 라떼로 만들어버린 '4대강'이 그랬고, 과학기술계를 바닥부터 뒤집어놓았던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가 그랬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내지 못했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됐던 노인 복지수당은 무의미할 정도로 축소돼 버렸고, 문화융성의 꿈은 국정농단의 빌미가 되어 불행한 탄핵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백 명의 캠프꾼들로 꾸려놓은 매머드 캠프에 묘한 이름을 붙여놓고 자랑하는 대선 후보도 있다. 캠프들이 쏟아내는 대부분의 공약들은 여전히 즉흥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급박한 대선 판국에서 어느 후보가 얼마나 황당한 공약을 내놓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어느 유력 대선 후보의 캠프가 떠들썩하게 발탁했다는 사교육 업계 출신의 어설픈 교육 전문가가 국회의 토론회에서 공개한 '대학 입학 평준화' 구상은 충격적인 것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학의 극심한 서열화와 대입의 과도한 경쟁을 완화시겠다는 단순명쾌한 발상이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절반 정도를 상위권 사립대에 추첨 방식으로 배정해버리자는 것이다. 학생 선발권을 포기하는 사립대에게는 정부 예산을 집중 지원해준다. 매년 4조 원만 투입하면 난마처럼 얽혀버린 교육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순진하고 어설픈 주장이다.
언뜻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정부 예산으로 상위권 사립대의 입학 '딱지'를 매입해서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나눠주겠다는 황당무계한 발상이다. 실제 정부의 정책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없는 엉터리 제안이지만 세상이 워낙 어수선하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물론 대학 입시를 추첨으로 대체하면 입시 경쟁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운 좋게 추첨에 당첨돼 원하는 상위권의 사립대에 들어가게 된 학생들에게는 더 없이 훌륭한 제도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나 자질과는 아무 상관없이 정부가 공짜로 나눠주는 입학 딱지를 놓쳐버리는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입장이 전혀 다르다. 정부의 예산 지원도 받지 못하는 하위권의 허접스러운 사립대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그런 제도에 승복할 정도로 어리숙한 학생이나 학부모는 없다. 실력은 없더라도 운이 좋았던 학생들로 채워질 상위권 사립대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학사·인사·재정의 자율권은 정부가 선심 쓰듯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교육 정책이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사교육 업계의 반응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고, 사교육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이 성공하는 교육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캠프의 변명은 당혹스러운 궤변이다. 소매치기를 잡겠다고 전직 소매치기 두목을 경찰로 채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망쳐놓은 사교육 업계의 대부(代父)를 동원하면 우리 교육을 되살릴 수 있다고 믿는 후보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후보가 아니라 캠프를 보고 투표를 하는 것이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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