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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네덜란드 총선서 배우자

하선규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입력: 2017-03-23 17:00
[2017년 03월 24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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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네덜란드 총선서 배우자
하선규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지난 주말 네덜란드에서 총선이 치러졌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년마다 반복되는 한 국가의 선거에 왜 전 세계인들이 주목했을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위기에 처한 유럽연합(EU)의 운명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때문이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있다. 유럽 각국의 극우 세력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유럽연합의 난민을 위한 인도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 위기, 시리아 난민 수용, 터키의 회원국 가입 등 유럽연합은 몇 년 전부터 회원국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난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또한 영국의 블렉시트와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회원국들의 결속력은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으며, 독일 다음으로 중요한 회원국 프랑스는 잇따른 테러 참사와 소요 사태, 극우 대선후보 르펜의 급부상으로 말 그대로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리고 극우 바람은 가장 안정된 시민사회를 갖고 있다는 북유럽 국가들까지 덮쳤다. 반이민 극우 노선의 스웨덴 민주당은 2014년 총선에서 13%를 득표, 제3당으로 도약했으며, 덴마크에서는 극우 인민당이 심지어 의회 제2당이 되었다. 네덜란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번 선거 기간 동안 극우파 자유당(PVV)이 제1당이 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예측이 나돌았다. 다행히도 예측은 기우로 끝났다. 선거 결과, 집권 중인 중도우파 자유민주국민당(VVD)이 총 150석 가운데 33석을 차지해 확실한 제1당이 됐으며, 자유당은 20석으로 제2당이 되는데 그쳤다. 현명한 네덜란드 유권자들은 무분별하고 비이성적인 극우파에게 국가 경영의 키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에게 총선 결과보다 더 흥미로운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 가지 상당히 부러운 지점이 있다. 첫째는 높은 투표율이고, 둘째는 네덜란드가 채택하고 있는 투표제도이며, 셋째는 이번 선거의 실질적인 승자가 31살의 젊은 녹색좌파당 대표라는 사실이다.

이번 네덜란드 총선 투표율은 무려 80.4%에 달했다. 필자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지난 20년 동안 치러진 우리나라 총선과 대선에서 이 정도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높은 투표율의 원인은 확실하다. 다른 일반적인 국가들처럼 만18세부터 투표권이 있다는 점과 투표 시간이 우리나라와 달리 아침 7시 30분에서 밤 9시까지라는 점이다. 우리보다 1시간 30분 늦게 시작하고 3시간 늦게 끝나니까, 총 투표시간이 1시간 30분 더 긴 셈이다. 곧 실시될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와 함께 반드시 도입해야 할 개선책으로 보인다.

이어 네덜란드는 순수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의원을 정당에 대한 선택으로 결정한다는 얘기다. 특이하게도 네덜란드 투표용지에는 정당과 각 정당의 후보들 이름이 낱낱이 적혀있다. 이번 투표용지에는 28개 정당과 각 정당에 속한 후보자 1116명의 명단이 모두 나열돼 있었다고 한다. 정당 정책에 대한 선택을 중심에 두되, 인물군에 대한 평가도 일부 보완하려는 취지임에 틀림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 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가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지난 총선 직전,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선거구 획정에 합의했는가?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추천은 또 얼마나 자의적이며 무원칙적으로 이루어졌는가? 이번 촛불 광장의 민심은 준엄하게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보다 합리성이 떨어지는 현행 제도를 당장 비례대표 명부제로 바꾸라고 말이다.

다음으로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인 녹색좌파당 대표 예시 클라버(Jesse Klaver)를 보자. 올해 31살인 이 매력적인 정치인은? 사진으로만 봐도 자신감과 매력이 철철 넘친다! - 캐나다의 미남 수상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에 비교돼 '네덜란드의 트뤼도'라 불리곤 한단다. 헌데 클라버는 뜬금없이, 이른바 '낙하산'으로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반대로 클라버는 21살에 중앙정치에 데뷔하여, 지난 10년간 착실히 사회경제 분야 전문성, 조직 장악력 및 지도력을 쌓아 마침내 녹색좌파당 당수에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모로코인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를 둔 그는, 극우파의 선전선동이 사회와 공동체를 분열시킨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명확히 인식시켰다. 예전의 오바마와 흡사하게 '변화의 시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클라버는 녹색좌파당의 의석을 4석에서 14석으로 늘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젊고 유능한 정치인의 당당하고 멋진 승리. 참 부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는 이런 젊은 정당과 정치인이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왜 우리 정치판은 약삭빠르고 노쇠한 정치꾼들의 영혼 없는 술책과 언쟁으로 가득 차 있을까? 왜 이들이 입만 열면 찾는 '국민'은 우리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느껴질까? 해답은 분명하다. 이들이 바로 진정한 정치 개혁과 사회 혁신을 가로막는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18세 투표권과 비례대표 명부제 도입을 막고 있는 이들도 바로 이 노쇠한 정치꾼들이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선거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은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다. 이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한국의 트뤼도' 내지 '한국의 클라버'는 앞으로도 영영 등장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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