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헤어 롤` 신드롬](http://contents.dt.co.kr/images/201703/20170316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헤어 롤` 신드롬")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이 선언했다. 대통령의 탄핵이 확정되는 순간, TV 앞에서 숨죽이고 역사적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 국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 수색은 거부하였습니다…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위법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 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할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선고 요지는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사고도 남는다.
어떤 이는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이처럼 가슴 뭉클 하도록 느껴 본 일이 없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은 단순히 유신공주의 퇴장이 아니라 박정희로 상징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으로 보고 있다. "국민들이 다시 한번 한국을 세계역사 속에 기록했다. 1919년 3월1일의 시위는 1943년 12월 열강 지도자들의 카이로선언에 '노예상태로 있는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조항을 넣을 수 있도록 했고, 1960년 4.19혁명은 전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갈망했던 민주정부를 이끌어냈다. 1979년 YH노동자들과 부산, 마산 시민들은 유신의 종말을 이끌어냈고, 1980년 광주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힘은 1987년 민주 항쟁의 씨앗이 됐다." 서울대 박태균 교수의 말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촛불을 든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다시 한 번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법에 기초해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재정립한 사례는 세계 현대사에서 지금까지 어떤 나라도 기록하지 못했던 쾌거라고 그는 평가했다.
지난 13일 법관 생활 30년을 마무리하고 퇴임한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은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인 지난 10일 뒷머리에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단 채 출근해서 화제가 됐다. 이 대행은 이날 평소보다 1시간 이른 7시50분쯤 출근했다. 짙은 남색 정장 차림에 관용차에서 내린 이 권한대행 뒷머리에는 분홍색 물체 2개가 매달려 있었다. 센스 빠른 기자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여성들이 머리에 컬(curl)을 넣을 때 주로 쓰는 헤어롤을 떼지 않은 채 출근한 것이 기자들의 눈에 띄었다. 카메라 플래시 속에 이 대행이 취재진에게 가볍게 목례 했을 때 이 값싼 플라스틱 물체는 보석처럼 빛났다.
분홍빛 헤어롤 두 개가 역사의 심판정에서 이 대행의 고뇌와 영광에 방점(傍点)을 찍은 셈이다. 헤어롤(hair roll)이 무엇인지 여자들은 다 안다. 그러나 hair roll이 틀린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Hair roller justice' gains attention(헤어롤 단 재판관 주목받다), 이것은 코리아타임스의 기사 제목이다. Lee Jung-mi has rollers in her hair(이정미 헤어롤을 달고 있다)에서 보듯 헤어롤은 헤어 롤러(hair roller)라고 써야 한다. 롤(roll)은 원통이나 둥근 상태를 가리키지 머리에 볼륨을 넣는 도구(roller)가 아니다. 헤어 롤러는 헤어 컬러(hair curler)라고도 한다.
AP통신은 "사람들은 헤어롤 해프닝을 이 대행이 판결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보여 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헤어롤 신드롬이라 할만 하다. "사람들은 헤어롤 두 개를 달고 출근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 나가자 밤새 고뇌하고 긴장했을 이 대행의 모습을 봤다"고 칭송과 경의를 아끼지 않았다(중앙일보, 2017. 3. 13). 이를 본 코미디언 김미화는 오늘 유행이라 하여 이를 패러디해서 SNS에 올렸고, 집회 참가자 사이에도 따라하기가 잇따랐다. 홍상지 기자는 "나는 이 권한대행의 작은 실수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미용사가 정성 들여 꾸민 헤어 스타일 보다 그의 소박한 모습이 훨씬 아름다웠다"고 썼다. 누구는 미용사 부르느라 세월호 구조의 골든 타임을 놓쳤고, 이를 심판하는 재판관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운 탓에 헤어롤을 달고 출근했다.
다음은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의 일부다. "박정희 신화를 못잊어 독재자의 딸을 여왕으로 뽑은 것은 국민이었다. 그가 헌재를 부정함으로써 일말의 안타까움도 갖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박근혜와 함께 한 시대가 갔다. 이제 여왕, 아니 왕 같은 대통령은 다시 이 땅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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