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편 영화 USB메모리 하나에
반도체기술 패러다임 변화 기대
반도체기술 패러다임 변화 기대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연구단장이 홀뮴(Ho) 원자 한 개로 디지털 신호의 최소 단위인 1비트를 안정적으로 읽고 쓰는 데 성공했다고 9일 밝혔다.
현재 상용화된 메모리는 '0'과 '1'로 정보를 저장하는 디지털 신호의 기본 단위인 1비트를 구현하는 데 약 십만 개의 원자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성과는 이를 단 하나의 원자로 구현한 것으로, 이보다 작은 저장단위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토대로 저장장치를 만들면 집적도를 기존 하드디스크(HDD)보다 약 1000배 높일 수 있어 50만 편의 영화를 USB 메모리 하나 크기 칩에 저장할 수 있다.
산화마그네슘 기판 표면 위에 놓인 홀뮴 원자는 위와 아래 둘 중 하나의 '스핀'을 가진다. 스핀은 원자 내부의 자성으로 인해 외부에 생긴 자기장으로, 방향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는 신호가 있어 이를 디지털 신호 '0'과 '1'로 대체해 1비트를 구현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홀뮴 원자에 적절한 전압 펄스를 가해 원자를 원하는 상태로 바꿀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논문의 공동저자인 최태영 IBS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원자 단위에서도 자기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이론을 실제로 증명했다"며 "홀뮴 원자들은 1㎚(나노미터·10억 분의 1m) 간격으로 밀집해도 서로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원자를 촘촘히 배열할 수 있어 저장밀도를 혁신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홀뮴 원자 옆에 철 원자를 놓아 스핀을 읽는 일종의 센서로 활용했다. 홀뮴이 만드는 자기장은 철 원자를 반대 방향으로 자화시킨다. 이때 철 원자의 '전자스핀공명(ESR)'을 측정하면 홀뮴 원자의 스핀을 감지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철 원자 한 개로 두 개의 홀뮴 원자가 만드는 총 네 가지 상태를 구별해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원자가 만드는 자기장을 감지해 디지털 신호를 읽는 방법은 현재 상용화된 하드디스크가 정보를 읽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하인리히 단장은 "기존 상식과 달리 홀뮴 원자들이 서로 근접해도 스핀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 이유를 규명하고, 영하 271.5℃의 극저온 환경에서 진행된 이 연구를 더 높은 온도에서 재현하는 것이 다음 목표"라며 "추가연구를 통해 두 가지 스핀 상태가 공존하는 양자제어가 가능해지면 양자컴퓨팅을 위한 '큐비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과는 하인리히 단장이 IBM 재직시절 주도한 연구결과로, 그는 올해 1월부터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으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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