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산업제도연구실장
![[포럼] 4차 산업혁명, 이제 `각론`을 설계하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703/2017030802102269607003[1].jpg "[포럼] 4차 산업혁명, 이제 `각론`을 설계하자")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충격도 어느덧 1년을 지나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를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느냐 이대로 주저앉고 마느냐가 결정될 것이라는 데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듯하다.
정부도 지난 1년 동안 숨 가쁘게 4차 산업혁명을 준비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9월 지능정보사회추진단을 발족하고 12월에는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2017년을 맞이했고, 기획재정부도 최근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개최하면서 인공지능과 VR과 같은 신산업이 기존 제도와 규제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각론으로 가야 한다. 사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사회에 대한 총론을 준비하는데 1년이면 너무 길었지만, 각론으로 가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잘 알려진 쿠팡의 로켓배송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2004년도에 화물차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에서 정부가 화물차량의 증차와 신규 허가를 조절하는 제도로 등장했다. 그런데 정부의 허가가 1년도 넘게 걸리고, 인터넷의 발달로 택배량이 증가하자 허가 없이 운영하는 불법택배 차량이 증가했고 쿠팡도 송사에 휘말렸었다. 이 법 하나가 폐지되는데 장장 12년이 걸렸다.
의료와 제조 등 기존 산업이 디지털 혁신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총론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미국, 일본은 대면진료 뿐만 아니라 통신기기 등을 활용한 원격진단, 원격의료 행위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시장에서는 대형 원격의료 사업자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다. 실제 미국내 최대 원격의료 업체인 '텔러독'(Teladoc)은 1100만 이상의 회원들에 365일 서비스를 제공하며, 2015년에 나스닥에 상장됐다. 하지만 국내는 의사와 환자 간 대면진료를 제외한 인터넷, 모바일 등을 통한 원격진료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AI를 활용한 정밀의료의 경우, 환자의 개인정보와 의료정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관건인데, 현행법은 연구 등 예외 사항을 제외하고는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런 각론이 해결되는데 앞선 유통 사례와 같이 12년이 걸린다면 우리의 앞날은 암울하다.
제도 말고도 문제는 또 있다. 제조업의 스마트 팩토리는 그 핵심이 분권화, 자율성과 연결성으로서 제품의 아이디어 개발 단계부터 디자인 및 제조를 거쳐 A/S 까지 긴밀하게 연계돼야 하고, 많은 부품을 납품 받아 완성품이 조립되기 때문에 독일도 관련 조직과 기업 간에 수평적 연계를 중시하고 있는데, 우리 중소기업이 비용중심의 대량생산을 유지한 채, 그저 '공정자동화' 수준으로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하는 것 같은데 이는 선진국과 더 멀어지는 길이다. 최근 정부는 공정혁신, 비용절감을 목표로 하는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위해 2200개 기업에 1108억원의 예산을 나눠준다고 한다. 걱정이다.
스마트 열풍은 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농가에 스마트 팜 보급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트랙터 같은 농기계 보급 사업처럼 추진하면 안 된다. 작물의 생육 데이터를 축적하고 활용해서 최적의 생장환경을 제공함으로서 재배작물의 고급화, 차별화 및 친환경화를 이룩하는 스마트 팜은 시설장비 및 SW시스템의 고도화와 농작물의 품종개량, 농작물의 유통혁신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디지털 역량이 기반이되는 혁신을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우리 농촌이 감당할 수 있을까? 사실 스마트 팜에 우리 대기업의 도전도 있었다. 동부의 자회사인 동부한농이 경기 화성 화옹간척지 10만㎡(3만평) 유리온실에 467억원을 들여 동양 최대 온실을 만들어 방울토마토를 생산해 수출을 해 보겠다고 했는데 지역주민의 반대로 못 하게 됐다. LG도 새만금에 엄청난 돈을 들여 스마트 팜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는데 농민단체와 전북도의회 등 정치권은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하면 농민 생존권이 위협 받는다"며 반대해서 그 땅을 놀리고 있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을 내쫓은 지금, 우리 농민의 생존은 정말 보장될 수 있는가?
4차 산업혁명에 혁신적 벤처창업이 늘어야한다는 총론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각론으로 가면 상황이 다르다. 창업에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금인데 은행대출은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이 너무 크고 창업투자자나 벤처캐피털(VC)에서 투자를 받으면 전환사채(CB)만 선호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CB는 꽃놀이패다. 기업가치가 훼손되면 투자금을 회수하고, 반대로 기업가치가 뛰면 주식으로 전환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창업의 출구전략으로 주식상장이 있지만 너무 오래 걸리고, M&A를 통한 국내 대기업의 인력 흡수도 활발하지 않다. 어느 때보다 도전과 혁신이 요구되는 지금 정부의 창업정책이 누구나 바라는 안정적인 직장에 못가서 할 수 없어 정부 보조금이라도 가지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게 하는 방식이라면 안 된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차라리 안정적이라는 공공조직과 대기업을 비정규직으로 바꿔서 창업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매력적인 선택이 되게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 각론에 응답해야 한다.
기술변화와 사회체제 간에 미스매치가 그 사회의 혁신성과를 결정하는데 그 미스매치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을 시스템 실패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앞에 두고 수많은 규제와 낡은 제도의 틀, 과거의 인식에 안주, 이해관계자간 갈등으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지금 시스템 실패를 넘어 국가 실패를 목전에 둔 위기상황이다.
이 병의 치료는 총론이 아닌 각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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