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방향 '스타트업→스케일업' 레벨업
끊임없는 시장가치 창출·육성이 효과적
"도전정신 부족보단 위험부담이 장애"
자금부족·상장 어려워 투자자찾기 애로
실패 경험 기업가에 재도전 기회줘야
벤처기업 M&A 통한 자금회수 1.3%
IT 1세대기업 제조업 인수역량 부족탓
일관된 정책으로 신뢰감 심어줘야
끊임없는 시장가치 창출·육성이 효과적
"도전정신 부족보단 위험부담이 장애"
자금부족·상장 어려워 투자자찾기 애로
실패 경험 기업가에 재도전 기회줘야
벤처기업 M&A 통한 자금회수 1.3%
IT 1세대기업 제조업 인수역량 부족탓
일관된 정책으로 신뢰감 심어줘야
■ 2017 리스타트 코리아
정치ㆍ경제ㆍ문화 '혁신 얼개' 새로 엮자
'하늘을 나는 택시'를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한 청년이 있다. 드론 벤처기업 '이항'을 창업한 28세 중국 청년 슝이팡이 그 주인공이다. 이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유인 드론 '이항 184'는 이르면 오는 7월 '드론 택시'로 두바이 하늘에 뜬다. 이 하늘을 나는 택시는 기사 없이 손님이 태블릿PC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지정된 장소로 데려다 준다. 두바이 도로교통청은 드론 택시를 시험 운항하고, 2030년까지 전체 교통량의 25%를 무인 방식으로 채울 계획이다.
'싱가포르의 MIT'로 불리는 난양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슝이팡은 전공보다 창업에 관심이 많은 '촹커(혁신 창업가)' 지망생이었다. 홍콩 출신 왕타오가 설립한 드론 제조업체 DJI의 성공을 보고 드론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한 그는 2014년 칭화대 출신의 후화즈, 베이징대 출신의 양전취안과 의기투합해 이항을 설립했다. 한 달 만에 스마트폰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첫 드론 제품 '고스트 1.0'을 출시했고, 이 드론은 1년 만에 70여 개국에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허름한 창고에서 3명의 젊은이가 설립한 이항은 설립 3년 만에 300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세계 드론업계를 주도하는 혁신기업으로 성장했다.중국은 한 해 20만 명의 대학 졸업생이 슝이팡과 같은 촹커의 길을 택하고 있다. 2010∼2014년 중국 스타트업 증가율은 98%로 글로벌 1위를 차지했으며, 하루 평균 4000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존전략으로 창업과 기업가 정신의 부활을 강조하며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저성장·저고용·저소비가 굳어지는 '뉴노멀'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선 기존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혁신밖에 답이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 증가율은 2015년 이후 10% 아래로 떨어졌고, 대학생 가운데 창업을 희망한 사람은 6%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생 30만 명은 각종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우주 개발에 뛰어든 '아이언맨' 엘론 머스크와 19세에 페이스북을 개발해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마크 주커버그, 500조원이 넘는 온라인 상거래 시장을 만든 마윈 등이 세상을 주도하는 '혁신가의 시대'에 한국은 외딴섬이 되고 있다.
◇창업으로 '고용·성장' 두 마리 토끼 잡는다=2010년대 이후 주요 국가들은 한결같이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스타트업 아메리카'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으며, 유럽연합(EU)은 벤처창업과 기업가 정신 활성화 등 10대 강령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또한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실현을 국정 목표로 삼았다.
이들이 기술 기반 창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창업이 취업난과 고학력 실업을 해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되면서 대기업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 여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미국 카우프만 재단에 따르면 2007년 미국에서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3분의 2가 창업기업에서 나왔고, 2001∼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설립 5년 미만 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절반을 창출했을 정도로 창업의 고용창출 효과는 크다.
두 번째 이유는 창업을 통해 국가 차원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 기업의 출현은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을 지닌 혁신 기업들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이 스스로 대기업으로 성장하거나 기존 대기업에 인수되거나 기술을 이전해 혁신 역량을 신속하게 수혈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해 스마트폰 시장을 열고, 구글이 적극적인 투자와 벤처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클라우드 컴퓨팅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등의 서비스를 시작하며 고용과 성장 회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앞으로 기술 변화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빠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대기업보다 창업기업의 혁신 역량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꽃피우려면 창업 자체만 촉진하는 방식보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들을 다수 육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정부 정책방향을 이제 '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으로 레벨업할 때"라고 설명했다.
◇'흙길' 걷는 국내 창업 기업="창업하고 1년은 각종 지원을 받아 버틸 수 있어요. 하지만 2∼3년 되면 금세 자금이 바닥나 은행 대출을 받기 시작하고 가족, 지인들 돈을 빌리죠. 그러다 실패하면 본인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여기저기 민폐를 끼쳐 손가락질만 받다가 끝나요. 다시 회복할 방법이 없죠."
최근 기자와 만난 벤처기업 지원기관 관계자는 국내 창업환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년들이 창업을 피하는 이유가 도전 정신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2015년 한국무역협회의 '한중일 대학(원)생 창업 인식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학생은 실패의 위험부담(38%)을 주요 창업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진입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3만 벤처시대'가 열렸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 창업 환경은 크게 변해왔다. 창업 등록은 그간 12단계에서 2단계로 축소됐고, 창업에 걸리는 시간도 22일에서 4일로 줄었다. 스타트업의 천국인 미국의 5.6일보다도 빠르다. 회사를 만들긴 쉬워졌지만 버티기는 만만치 않다. 3년을 넘게 버틴 창업 기업은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비해 크게 뒤질 뿐만 아니라, 조사 대상 26개국 중 25위로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벤처업체 전체 매출은 215조9000억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률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기업 당 종사자 수도 전년도보다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거래의 70% 이상을 대기업에 의존하다 보니 불황의 여파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계곡' 건너지 못하는 투자 현실=한국에서 기술 창업이 어려운 이유로는 대표적으로 투자 문제가 꼽힌다. 민간 벤처투자를 나타내는 '엔젤투자' 규모는 2014년 기준 834억원으로 미국 25조원의 0.3% 수준에 그쳤다. 엔젤투자의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투자가 초기 스타트업에 충분히 집중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5년 총 투자액의 68.9%가 3년 이상 된 기업에, 26.7%가 7년 이상 된 기업에 투자됐다.
벤처 투자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해외에선 벤처 투자자들은 투자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를 주로 활용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까다로운 상장 조건으로 스타트업이 코스닥에 상장하기까지 평균 13년이 걸린다. 이는 미국의 6.7년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기간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벤처캐피털 자금의 수명보다도 길어 사실상 투자자를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 때문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도 '죽음의 계곡'을 지날 때까지 자금 부족을 버티지 못해 상업화에 실패한다.
영국의 회계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세이지가 기업 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의 창업자 189명을 분석한 결과 40%는 최소 2번, 많게는 5번째 창업에 도전해 성공한 경우였다. '투자' 보단 '지원'과 '융자'에 치우친 한국의 벤처 투자 환경은 창업자들이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더 큰 성공을 위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OECD는 "벤처캐피털을 혁신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 시스템에서 자본 시장의 역할이 강화된 금융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의 일부로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를 경험한 기업가에게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는 다음 기회가 제공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M&A 시장 발전도 우선 과제"라고 조언했다.
국내에선 창업 기업을 인수해 큰 산업으로 키우거나,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산업에 접목하는 등 '열린 혁신' 역량을 가진 기업이 많지 않다. 구글이나 애플 등이 선도적인 기술을 끊임없이 찾고 이를 보유한 유망 창업 기업들을 계속해서 사들이는 것과 대조된다. 실제로 국내 벤처기업의 M&A를 통한 자금 회수비중은 1.3%에 불과하며, 거래규모도 875억달러로 미국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 아직 국내 IT 1세대 기업들이 서비스 분야 외에 제조형 기업을 사들일만한 기술적, 재정적 역량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그보다도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유망한 중소기업들을 매수하면서 기술만 탈취하거나 기술개발 능력이 있는 기술자만 흡수하고 창업자를 배제하는 등의 부정적 전례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또 국민 정서 상 대기업의 사업 확장이 이른바 '문어발 확장'으로 비치는 거부감 때문에 M&A에 적극적이지 못하는 상황도 문제다. 정부는 2013년 기술혁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M&A에 대해 법인세를 10% 감면하는 등의 제도를 도입했으나 관련 규제와 절차를 완화하고 세제혜택을 주는 등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관된 정책으로 창업자들에게 신뢰감 심어줘야=세계에서 가장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는 지역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초기 기술개발과 창업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돕는 엔젤투자가와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활발하고, 시제품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서 다수로부터 펀딩을 받을 수 있는 '킥스타터'와 같은 클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돼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사업화가 진전된 창업 기업들을 더 큰 기업들이 M&A 하는 시장도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런 실리콘밸리 방식의 산업 생태계는 중국에서도 IT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작동하기 시작해 알리바바와 샤오미 등의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강점은 아이디어 수집과 개발, 시제품 생산에 이르는 지원이 원활히 연계돼 쉽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는 점이다. 또 창업에 필요한 각종 멘토링과 네트워킹을 제공하는 창업 엑셀러레이터 등이 활성화돼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역할을 맡기기 위해 전국 17개 지역에 대기업이 한 곳씩 참여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웠다. 정부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혁신적인 모델"이라고 설명하고, 일부에선 "사자 우리에 초식 동물을 넣어 키우는 꼴"이라며 우려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현 정부의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센터는 존립 가능성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창업자들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춰 새로운 정권이 과거 정권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 자체가 불안 요소다.백세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협력실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로 스타트업 육성에 매진해도 될까 말까인데 이런 정쟁의 사이에 서 있는 것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차기 정권이 누가 되었든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영향을 받아 존폐가 논해져선 안 되고 일관성 있는 혁신정책들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정치ㆍ경제ㆍ문화 '혁신 얼개' 새로 엮자
'하늘을 나는 택시'를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한 청년이 있다. 드론 벤처기업 '이항'을 창업한 28세 중국 청년 슝이팡이 그 주인공이다. 이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유인 드론 '이항 184'는 이르면 오는 7월 '드론 택시'로 두바이 하늘에 뜬다. 이 하늘을 나는 택시는 기사 없이 손님이 태블릿PC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지정된 장소로 데려다 준다. 두바이 도로교통청은 드론 택시를 시험 운항하고, 2030년까지 전체 교통량의 25%를 무인 방식으로 채울 계획이다.
'싱가포르의 MIT'로 불리는 난양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슝이팡은 전공보다 창업에 관심이 많은 '촹커(혁신 창업가)' 지망생이었다. 홍콩 출신 왕타오가 설립한 드론 제조업체 DJI의 성공을 보고 드론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한 그는 2014년 칭화대 출신의 후화즈, 베이징대 출신의 양전취안과 의기투합해 이항을 설립했다. 한 달 만에 스마트폰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첫 드론 제품 '고스트 1.0'을 출시했고, 이 드론은 1년 만에 70여 개국에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허름한 창고에서 3명의 젊은이가 설립한 이항은 설립 3년 만에 300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세계 드론업계를 주도하는 혁신기업으로 성장했다.중국은 한 해 20만 명의 대학 졸업생이 슝이팡과 같은 촹커의 길을 택하고 있다. 2010∼2014년 중국 스타트업 증가율은 98%로 글로벌 1위를 차지했으며, 하루 평균 4000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존전략으로 창업과 기업가 정신의 부활을 강조하며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저성장·저고용·저소비가 굳어지는 '뉴노멀'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선 기존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혁신밖에 답이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 증가율은 2015년 이후 10% 아래로 떨어졌고, 대학생 가운데 창업을 희망한 사람은 6%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생 30만 명은 각종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우주 개발에 뛰어든 '아이언맨' 엘론 머스크와 19세에 페이스북을 개발해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마크 주커버그, 500조원이 넘는 온라인 상거래 시장을 만든 마윈 등이 세상을 주도하는 '혁신가의 시대'에 한국은 외딴섬이 되고 있다.
◇창업으로 '고용·성장' 두 마리 토끼 잡는다=2010년대 이후 주요 국가들은 한결같이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스타트업 아메리카'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으며, 유럽연합(EU)은 벤처창업과 기업가 정신 활성화 등 10대 강령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또한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실현을 국정 목표로 삼았다.
이들이 기술 기반 창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창업이 취업난과 고학력 실업을 해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되면서 대기업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 여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미국 카우프만 재단에 따르면 2007년 미국에서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3분의 2가 창업기업에서 나왔고, 2001∼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설립 5년 미만 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절반을 창출했을 정도로 창업의 고용창출 효과는 크다.
두 번째 이유는 창업을 통해 국가 차원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 기업의 출현은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을 지닌 혁신 기업들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이 스스로 대기업으로 성장하거나 기존 대기업에 인수되거나 기술을 이전해 혁신 역량을 신속하게 수혈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해 스마트폰 시장을 열고, 구글이 적극적인 투자와 벤처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클라우드 컴퓨팅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등의 서비스를 시작하며 고용과 성장 회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앞으로 기술 변화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빠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대기업보다 창업기업의 혁신 역량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꽃피우려면 창업 자체만 촉진하는 방식보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들을 다수 육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정부 정책방향을 이제 '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으로 레벨업할 때"라고 설명했다.
◇'흙길' 걷는 국내 창업 기업="창업하고 1년은 각종 지원을 받아 버틸 수 있어요. 하지만 2∼3년 되면 금세 자금이 바닥나 은행 대출을 받기 시작하고 가족, 지인들 돈을 빌리죠. 그러다 실패하면 본인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여기저기 민폐를 끼쳐 손가락질만 받다가 끝나요. 다시 회복할 방법이 없죠."
최근 기자와 만난 벤처기업 지원기관 관계자는 국내 창업환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년들이 창업을 피하는 이유가 도전 정신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2015년 한국무역협회의 '한중일 대학(원)생 창업 인식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학생은 실패의 위험부담(38%)을 주요 창업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진입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3만 벤처시대'가 열렸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 창업 환경은 크게 변해왔다. 창업 등록은 그간 12단계에서 2단계로 축소됐고, 창업에 걸리는 시간도 22일에서 4일로 줄었다. 스타트업의 천국인 미국의 5.6일보다도 빠르다. 회사를 만들긴 쉬워졌지만 버티기는 만만치 않다. 3년을 넘게 버틴 창업 기업은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비해 크게 뒤질 뿐만 아니라, 조사 대상 26개국 중 25위로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벤처업체 전체 매출은 215조9000억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률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기업 당 종사자 수도 전년도보다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거래의 70% 이상을 대기업에 의존하다 보니 불황의 여파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계곡' 건너지 못하는 투자 현실=한국에서 기술 창업이 어려운 이유로는 대표적으로 투자 문제가 꼽힌다. 민간 벤처투자를 나타내는 '엔젤투자' 규모는 2014년 기준 834억원으로 미국 25조원의 0.3% 수준에 그쳤다. 엔젤투자의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투자가 초기 스타트업에 충분히 집중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5년 총 투자액의 68.9%가 3년 이상 된 기업에, 26.7%가 7년 이상 된 기업에 투자됐다.
벤처 투자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해외에선 벤처 투자자들은 투자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를 주로 활용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까다로운 상장 조건으로 스타트업이 코스닥에 상장하기까지 평균 13년이 걸린다. 이는 미국의 6.7년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기간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벤처캐피털 자금의 수명보다도 길어 사실상 투자자를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 때문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도 '죽음의 계곡'을 지날 때까지 자금 부족을 버티지 못해 상업화에 실패한다.
영국의 회계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세이지가 기업 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의 창업자 189명을 분석한 결과 40%는 최소 2번, 많게는 5번째 창업에 도전해 성공한 경우였다. '투자' 보단 '지원'과 '융자'에 치우친 한국의 벤처 투자 환경은 창업자들이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더 큰 성공을 위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OECD는 "벤처캐피털을 혁신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 시스템에서 자본 시장의 역할이 강화된 금융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의 일부로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를 경험한 기업가에게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는 다음 기회가 제공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M&A 시장 발전도 우선 과제"라고 조언했다.
국내에선 창업 기업을 인수해 큰 산업으로 키우거나,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산업에 접목하는 등 '열린 혁신' 역량을 가진 기업이 많지 않다. 구글이나 애플 등이 선도적인 기술을 끊임없이 찾고 이를 보유한 유망 창업 기업들을 계속해서 사들이는 것과 대조된다. 실제로 국내 벤처기업의 M&A를 통한 자금 회수비중은 1.3%에 불과하며, 거래규모도 875억달러로 미국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 아직 국내 IT 1세대 기업들이 서비스 분야 외에 제조형 기업을 사들일만한 기술적, 재정적 역량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그보다도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유망한 중소기업들을 매수하면서 기술만 탈취하거나 기술개발 능력이 있는 기술자만 흡수하고 창업자를 배제하는 등의 부정적 전례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또 국민 정서 상 대기업의 사업 확장이 이른바 '문어발 확장'으로 비치는 거부감 때문에 M&A에 적극적이지 못하는 상황도 문제다. 정부는 2013년 기술혁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M&A에 대해 법인세를 10% 감면하는 등의 제도를 도입했으나 관련 규제와 절차를 완화하고 세제혜택을 주는 등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관된 정책으로 창업자들에게 신뢰감 심어줘야=세계에서 가장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는 지역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초기 기술개발과 창업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돕는 엔젤투자가와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활발하고, 시제품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서 다수로부터 펀딩을 받을 수 있는 '킥스타터'와 같은 클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돼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사업화가 진전된 창업 기업들을 더 큰 기업들이 M&A 하는 시장도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런 실리콘밸리 방식의 산업 생태계는 중국에서도 IT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작동하기 시작해 알리바바와 샤오미 등의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강점은 아이디어 수집과 개발, 시제품 생산에 이르는 지원이 원활히 연계돼 쉽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는 점이다. 또 창업에 필요한 각종 멘토링과 네트워킹을 제공하는 창업 엑셀러레이터 등이 활성화돼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역할을 맡기기 위해 전국 17개 지역에 대기업이 한 곳씩 참여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웠다. 정부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혁신적인 모델"이라고 설명하고, 일부에선 "사자 우리에 초식 동물을 넣어 키우는 꼴"이라며 우려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현 정부의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센터는 존립 가능성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창업자들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춰 새로운 정권이 과거 정권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 자체가 불안 요소다.백세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협력실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로 스타트업 육성에 매진해도 될까 말까인데 이런 정쟁의 사이에 서 있는 것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차기 정권이 누가 되었든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영향을 받아 존폐가 논해져선 안 되고 일관성 있는 혁신정책들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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