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블랙 리스트와 `블랙 텐트`](http://contents.dt.co.kr/images/201702/20170224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블랙 리스트와 `블랙 텐트`")
'블랙 리스트'라는 단어가 탄핵 국면에서 핵심어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블랙리스트는 국가 지원금에서 배제한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이며 청와대가 작성해 문화부가 그 실행을 담당했다고 한다. 최근 사태 속에서 문화예술 영역을 단지 이권개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어리숙한 영역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자신들이 배제시킨 사람들의 명단 때문에 오히려 자승자박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현재의 쟁점으로부터 살짝 벗어나서 질문을 던져보자.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검열 정국과는 다른 맥락에서 사고를 진행 시킨다. 국가가 예술을 장려하고 진흥하고 창작의 물질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창작자를 지원한다면 과연 누구를 지원해야 하는가?
물론 훌륭한 창작자에게 지원돼야 할 것이지만, 미적 영역에서, 그리고 공공성의 실현이 문제되는 공적 지원을 통해 장려돼야 할 미적 창작품이란 어떤 것일까?
블랙리스트 논의 속에서 '조씨고아'라는 작품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작품을 본 후 감동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든 연출을 블랙리스트에서 제외시킬 것을 건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조씨고아'는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2015년 모든 연극상을 석권했다. 그런데 위의 논리대로라면, 국가 지원을 받아야 하는 작품은 완성도가 높고, 관객의 호응이 높으며 저명한 상을 통해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우리 예술계를 '대표'하는, '중심'에 위치하며, 시장에서도 자생력을 갖는 창작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격려돼야 하고 지원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한 극장에서 장기간 공연되는 브랜드 공연 혹은 레퍼토리가 되며 혹은 고부가 문화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집중 지원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작품과 창작자들이 지원받는 것과, 이러한 작품들이 지원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대표성, 중심성, 시장성이 기준이 될 때, 그 자체로서 배제의 원리가 된다. '완성도 높고, 관객호응도가 좋은 작품'의 창작을 진흥하기 위한 '창작산실' 프로그램이 블랙리스트 집행의 대표적 사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개념이 국정의 한 방향으로 제시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집행하는 검열의 행위보다 더 심각한 것이 '완성도 있고, 관객 호응도 높은'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여 지원한다는 때로 '상식적'으로 보이는 태도 그 자체다. 국가가 예술창작행위를 지원함으로써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은 예술창작행위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공적 지원은 예술창작의 생태계가 균형 있게 형성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광화문 광장에 '블랙 텐트'라 이름 붙여진 임시 가설극장이 연극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블랙 텐트'는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극장의 공공성에 대해 새롭게 질문을 제기하는 시도이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그리고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자동차들의 소음 속에서도 이 남루한 극장의 공연들은 계속된다. 이들은 공적지원으로부터 배제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예술가들의 창작 행위의 지속성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다양성을 지닌 작품들의 지속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이 텐트 극장은 문화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국립극장이 마땅히 수행해야 했지만 방기한 공공성 실현의 임무를 자신들의 것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유목민들이 그러하듯 텐트는 한 자리에서 또 다른 자리로 이동하기 위한 임시의 거처이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들의 텐트는 거둬지고 그들은 마치 유랑극단이 새로운 마을을 찾아 떠나가듯 그렇게 떠나갈 것이다. 옮겨감 그것이 유목인을, 유랑극단의 삶을 지속시키는 방식이다. 그들은 옮겨감으로써만 존속한다. 창작자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또 다른 작품으로, 하나의 개념에서 또 다른 개념으로 옮겨 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리하여 다양한 옮겨감의 시도가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국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돼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