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시론] `연구자 자존감` 일으켜 세워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702/2017021702102351607001[1].jpg "[시론] `연구자 자존감` 일으켜 세워라")
필자가 융합연구정책센터장을 맡고 있을 몇 해 전 일이다. NBIC 융합기술 보고서로 전 세계적으로 융합연구를 본격화한 미국 국립과학재단 디렉터인 미하일 로코(Mihail Roco)가 한국의 국가융합기술정책과 융합연구센터를 벤치마킹을 하고 싶다며 만남을 요청해 왔다. 아직 우리 융합기술수준이 선진국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아해 했었다. 한발 더 나아가 EU의 융합연구회에서는 우리 융합연구정책을 배우고 싶다며 기조연설을 부탁했다. 게다가 우리가 과학기술 선도 국가로 올려봤던 그들이 위기라 주장하며 혁신을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한국이라니 납득하기 어려운 하소연이었다.
사실 50년 짧은 역사의 대한민국 과학기술은 급성장을 거듭하여 21세기 과학기술 대국으로 성장했다. R&D 투자(Input)는 2015년 GDP 대비 R&D 투자율 4.29%로 세계 1위이다. 연구개발인력 규모도 6위에 인구만 명당 68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연구개발 결과물(Output)도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특허등록 건수는 1980년 1632건에서 2014년 12만9786건으로 80배가 늘었다. 미국, 일본 및 유럽 모두에 등록한 삼극특허는 세계 4위에 올라섰다. 1980년 200여건에 불과했던 SCI 논문은 2013년 5만4691건으로 세계 9위 수준이 됐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효과로 대표되는 성과(Outcome)는 1인당 산업부가가치는 16위에, 기술사업화는 47위에 머물렀다. 투자, 결과물에 못 미치는 성과에 대한 성적표는 최근 과학기술계에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필자는 이처럼 투자, 결과물, 성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우리 과학기술을 미적분학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으면 한다. 속도를 미분하면 가속도이듯 미분은 변화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속도를 적분하면 이동거리가 된다. 즉 적분은 축적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논문과 특허 규모를 우리 과학기술의 속도 즉 현재 수준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R&D 투자는 과학기술 수준의 변화를 의미하는 미분이 된다. 우리 과학기술의 축적으로 생겨나는 사회경제적 효과는 자연스레 적분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은 들쑥날쑥한 2015년 국가과학기술경쟁력 순위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블룸버그는 대한민국 혁신지수를 세계 1위로 평가했다. 과학기술 수준의 가속도를 평가했을 것이다.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는 우리 과학경쟁력을 6위로 봤다. 딱 현재 과학기술 수준이다. 이에 반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우리의 혁신수준을 20위권 후반으로 봤다. WEF의 특성상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이 중요했을 터이다. 결국 우리는 과학기술 선진국이 보유한 적분을 부러워 하지만, 그들은 최고수준의 한국 미분이 두려운 것이다.
50년 전 국가적 부름을 받고 사사로운 이로움을 버리고 귀국한 18인의 과학자 도전 정신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자는 세계 과학기술 경쟁력 6위라는 현재 모습을 일궈냈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또한 우리 정부는 훌륭한 국가 과학기술 정책으로 세계 1위 R&D 투자율을 확보했다. 사회경제적 성과도 여러 해에 걸친 추이를 살펴보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기술수출액이 급격히 늘면서 0.07 이었던 기술무역수지비가 2015년 0.63으로 대폭 개선됐다.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너나들이 관계 속에 과감한 도전과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경제적 효과는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겠지만 선진국과 우리의 적분값이 아직까지는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이라는 것도 큰 이유다. 우리보다 100년 이상 더 긴 과학기술 역사를 가진 그들보다 더 많이 투자한 적이 없다. 당장 2015년 R&D 규모만 봐도 미국, EU, 일본은 우리보다 2.5배에서 8배 이상 투자하고 있다. 그런 한계가 있으니 현재에 안주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급한 마음에 오리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과학기술 투자를 동결·축소하거나, 단기 경제적 효과가 있는 분야로 투자를 집중하자는 주장도 균형감 있게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효과를 증폭할 수 있는 새로운 R&D 전략이 필요하다. 개념설계 역량과 같은 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 과학기술 공유자산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필자는 새로운 R&D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도전·창의적 연구와 몰입연구 환경이라 믿는다. 연구개발도 사람이 한다. 당연히 그 첫 걸음은 답을 잘하는 과학자가 아닌, 질문을 잘하는 도전적이면서 창의적인 과학자로의 변화이어야 한다.
이는 자존감 없는 연구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자가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분위기 마련도 필요하다. 물론 연구자 각자도 윤리와 역사적 사명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추격형 연구에서 효과적이었던 하향식 연구조직 관리도 변해야 한다. 혁신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연구자와 소통 없이 일방 통행하는 혁신은 여기까지다. 연구자의 자존감을 망가뜨려서는 선도형 연구 패러다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리 잠자(Gregor Samsa)야 외압에 눌려 순종적인 벌레로 살다 갔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연구자는 그럴 수도 그래서도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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