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시 특정 질병이 발생한 부위만 밝은 빛을 내도록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직접 몸에서 조직을 떼어내는 생검 없이도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질병 인자의 생화학적 상태까지 확인 할 수 있어 암이나 뇌혈관질환 등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천진우 나노의학 연구단장(연세대 화학과 특훈교수·사진) 연구팀이 병든 조직을 주변 조직에 비해 최대 10배 밝게 보이게 만드는 '나노 MRI 램프'를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MRI는 자기장과 고주파를 체내의 수분과 반응시켜 영상을 만들어내는 장비다. 보통 MRI 촬영 시에는 혈관이나 이상 부위가 더 잘 보이게 만드는 '조영제'를 사용한다. 하지만 조영제는 주변 조직과 병든 조직 모두를 밝게 만들어 병변 부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반면 연구단이 개발한 나노 MRI 램프는 특정 질병과 연관된 생체 인자와 만났을 때만 스위치가 켜진다. 천진우 단장은 "기존 MRI 조영제가 밝은 대낮에 램프를 켠 것이라면, 나노 MRI 램프는 어두운 밤에 램프 하나를 켜는 셈"이라며 "MRI 조영 진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노 MRI 램프는 두 개의 자성 물질을 생체 인자 인식 물질로 연결한 형태로 이뤄져 있다. 연구단은 두 자성 물질이 근접한 거리에 따라 MRI 신호 강도가 달라지는 '자기 공명 튜너(MRET)'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나노 MRI 램프를 만들었다. 나노 MRI 램프가 암 세포 등 특정 부위에 접근하면 생체 인자 인식 물질이 이와 반응해 떨어져 나가면서 두 자성 물질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이 때 두 물질의 사이가 7㎚(나노미터)를 넘어서면 MRI 신호가 켜지며, 10㎚가 되면 강력한 MRI 신호를 보낸다.
연구단은 암 세포가 전이될 때 나오는 인자인 'MMP-2' 효소를 찾는 나노 MRI 램프를 만들어 암을 진단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나노몰(nM·10억 분의 1몰) 농도 이하의 극미량의 MMP-2를 선택적으로 검출하고, 암에 걸린 동물 모델의 암 부위에서만 강한 MRI 신호를 보내는 것을 확인했다.
이 기술은 어떤 생체 인자 인식 물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질병 인자 탐색 뿐만 아니라 특정 유전자와 단백질, 화학분자, 금속, 산도 등을 MRI로 영상화 할 수 있어 앞으로 새로운 MRI 플랫폼 기술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천 단장은 "나노 MRI 램프는 원리가 간단하면서 높은 정확도와 민감도를 나타내고 더욱 정밀하고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분자 수준에서 관찰하고 진단하는 영상 진단의 신개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나노 MRI 램프와 기존 MRI 조영제의 차별성을 설명하는 그림. 나노 MRI 램프는 특정 생체인자를 만날 때만 켜져 질병 부위와 정상 부위 조직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반면, 기존 MRI 조영제는 항상 신호가 켜져 있어 구별이 흐릿하다.(자료 : I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