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운 명지대 융합SW학부 교수ㆍ한국OMG 회장
![[포럼] 단편적 SW육성정책 안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01/2017012502102251607001[1].jpg "[포럼] 단편적 SW육성정책 안된다")
수년 전부터 모바일폰, 텔레비전, 냉장고, 자동차 등의 제품에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이들 제품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제품들이 기계적 혹은 전자적으로 제어되고 있었으므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혹 소프트웨어로 제어되는 제품이라 할 지라도 소프트웨어가 너무 간단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제품들은 기계적 기능이나 품질은 기본이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그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율주행자동차, 인공지능 냉장고, 스마트 텔레비전 등 수많은 제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도 기업도 소프트웨어 기술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소프트웨어 기술 관련해 기업들을 컨설팅하거나 정책 관련 업무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정부나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의 본질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기계 부품을 개발하듯 단기적 단편적 기술로 생각해, 투자하면 단기간에 개발될 수 있으며 개발되면 그것으로 소프트웨어 기술이 확보돼 양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해,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등의 기술 개발에 이르기까지의 정부의 시도는 바로 이러한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다. 아무런 장기적 비전 없이 정책 담당자의 주관적 이해관계에 의해 '아니면 말고' 방법으로 추진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은 어느 특정 분야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즉 지능의 영역을 대체하는 기술이다. 비유하자면 소프트웨어 기술의 개발은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교육시키는 것과 같다. 어린 컴퓨터를 키워 대학생 컴퓨터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초등학생에게 대학 교육시킨다면, 혹시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다른 대학생과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실제 업무에 적용할 경우 위험하기까지 할 수 있다.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자율주행 자동차가 강남대로를 운전해가는 데모를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자동차 회사가 자율 주행자동차의 본질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프트웨어 기술의 확보는 점진적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때로는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1980년경 미국과 유럽에서는 바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함께 소프트웨어의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따른 소프트웨어 비용의 증가와 소프트웨어 오작동으로 야기된 위험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를 소프트웨어 위기(Software Crisis)라 부른다. 제품 원가 비중에서 하드웨어 비용은 감소하는 반면 소프트웨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소프트웨어 오작동으로 인해 소련과 미국은 핵전쟁 위기까지 겪었으며, 유럽의 아리안5 로켓은 비행 도중 폭발해 약 3.7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손실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과연 국내 수출관련 제품들의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기업들이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소프트웨어 기술 확보에 대한 현실적 투자는 몇몇 선진 기업에서나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소프트웨어가 담당할 기능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제품의 지능화 융합화가 이뤄짐에 따라 소프트웨어의 기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기반 제품 개발 기업에 소프트웨어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소프트웨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또한 미국과 유럽의 사례처럼 사회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까지도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러 방법들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종합한 결과가 '소프트웨어 공학'이다. 소프트웨어 공학은 비체계적이고 경험적 소프트웨어 개발을 가시적으로 체계화하는 공학적 방법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창작의 수준에서 체계적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정, 설계 방법, 효율적 프로그램의 방법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기반기술 들을 제공한다. 소프트웨어 공학은 소프트웨어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 체력에 해당한다. 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그래픽스, IOT 등 기술들이 체계적으로 연계되고 융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소프트웨어 공학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해 국책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70년대 시스템공학연구소를 시작으로 1980년대에 전자통신연구소에 소프트웨어 공학연구단이 만들어졌으며, 2016년까지 정보통신진흥원부설 소프트웨어공학센터로 명맥을 유지하며 많은 노력이 진행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는 정말로 소프트웨어 위기가 닥치고 있는 2016년 말 소프트웨어공학센터를 폐쇄하고 기능을 대폭 축소해 NIPA의 일개 부서로 전락시켜버렸다. 도대체 이를 추진하고 있던 소프트웨어 정책 담당자는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는 알고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다행인 점은 몇몇 선진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공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재사용 플랫폼(Reuse Platform), 프로세스(Software Process), 아키텍처(Software Architecture) 등 소프트웨어 공학 기술의 도입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 제품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융복합 서비스에 달려있다. 국내 산업 경쟁력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떻게 소프트웨어 기술의 기반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들의 노력과 함께 관련 연구소, 대학, 정부는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소프트웨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앞으로 우리 경제의 몇 십 년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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