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법원이 특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삼성그룹이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아직 재판이 남아있는 데다 특검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삼성그룹의 경영 공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한 시름을 놓았다. 일단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피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늘어난 만큼 앞으로 재판일정에 대비해 역량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 매출 271조8800억원(2015년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본사 기준, 해외매출 미포함)에 이르는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의 투자와 지배구조 재편 등 경영 행보는 이 부회장이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당시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공백을 메웠지만, 현 상황에서는 이 부회장을 대체할 공식적인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검찰의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국회 청문회, 특검수사 등으로 이미 경영 시계가 멈춰진 상황이었다. 사장단 인사는 물론 올해 투자·채용계획 등도 모두 미뤄놓은 상태다.
그나마 9조6000억원 규모의 하만 인수 발표 등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 역시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큰 암초에 부딪혔다. 최근 미국 내 일부 주주들이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조건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등 잡음이 발생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총수가 주주들을 직접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를 수습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1차 투자금액으로 역대 최대액인 15조6000억원을 투입한 경기 평택 반도체공장의 경우 일단 예정대로 상반기 내 준공식을 할 예정이지만, 수조원 규모의 대형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추가 투자 결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에 이 사업에서만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투자 위축도 있지만, 지배구조 재편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는 점은 삼성그룹 입장에서 더 뼈아프다. 특검이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의 핵심축으로 꼽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을 구속영장 청구의 주요 증거로 제시한 만큼 더 이상의 움직임은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공개한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검토 등의 작업도 현 상황에서는 모두 잠정 중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설령 구속되더라도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각자 경영체제는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사업 전반이 마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단 사업과 지배구조 재편 등의 변화 움직임에는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