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퇴진" 추위 녹인 촛불 … 평화시위 새 역사 썼다

"박 대통령 퇴진" 추위 녹인 촛불 … 평화시위 새 역사 썼다
이미정 기자   lmj0919@dt.co.kr |   입력: 2016-11-27 17:10
청와대 앞 200m까지 행진
폴리스라인 준수… 충돌없어
아이 데리고 나온 부모들
핫팩 쥐어주며 추위 견뎌
집회행사 뒤 쓰레기 수거
외신 "평화적 축제 분위기"
"박 대통령 퇴진" 추위 녹인 촛불 … 평화시위 새 역사 썼다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행진을 마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서울 150만명, 지방 40만명 등 전국에서 190만명이 참여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청와대를 동·남·서쪽에서 포위하듯 에워싸는 '청와대 인간띠 잇기'가 실현됐으며 헌정 이래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신교동 로터리까지 시위대가 진출했다. 유동일기자 eddieyou@

사상 최대 촛불집회
전국 '190만 촛불' 의미


분노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평화는 이어졌다. 26일 전국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90만명(경찰 추산 순간 최다인원 33만여명)이 모였지만 우려한 폭력사태는 없었다. 27일 0시 기준 연행된 인원은 0명이었고 서울 광화문광장은 쓰레기 한 조각을 찾기 어려웠다.

첫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시민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서울에만 150만명(경찰 추산 순간 최다인원 27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참여했다. 지난 12일 3차 촛불집회의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을 넘어선 숫자다.

사전 행사에서 청와대 코 앞까지 행진이 이어졌지만 시민들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35만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청와대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청운동 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다. 민중총궐기 때 허용됐던 내자동 로터리보다 600m가량 청와대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이에 시민과 경찰 사이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행진했고, 폴리스라인을 준수했다. 일부 시위대가 행진 허용 시간까지 남아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한 본 집회에선 뮤지컬 배우들이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온 '민중의 노래'를 부르면서 마치 공연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수 안치환씨와 양희은씨의 무대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안치환씨는 대표곡 '사랑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는 꽃보다 아름다워'로 개사해 열창했다. 시민들은 추위 속에서도 이를 따라부르며 몸을 들썩였다. 양희은씨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널리 불린 '아침이슬'을 열창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은 '어둠에서 다시 빛을 밝히자'는 의미를 담아 오후 8시 참가자들이 1분간 일제히 촛불을 끄는 소등 행사를 진행했다. 시민들은 일순간 촛불을 끄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라고 소리쳤다. 주변의 일부 상점도 함께 불을 껐고 운전자들은 1분간 경적을 올리며 동참했다.

지난 집회와 마찬가지로 이날 역시 추운 날씨에도 가족 단위 참여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자녀에게 따뜻한 겉옷을 입히고 핫팩 등을 쥐어 주며 함께 추위를 견뎠다. 이날 아내, 초등학생 아들과 집회에 처음 참여한 남모(44)씨는 "아내가 오늘 생일이지만 가족식사를 미루고 왔다"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집회가 끝난 뒤 자원봉사자와 시민들은 솔선수범해 쓰레기를 치웠다. 이날은 특히 내린 눈이 녹아 유인물 등이 물에 젖어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집회가 끝난 뒤엔 150만명의 시민들이 왔다 갔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시위대는 새벽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자유발언을 하며 1박2일 밤샘 축제를 이어갔다.

집회를 보도한 외신도 여전히 평화로운 집회가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시위는 평화로웠고 거의 축제 같았다"고 평가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서울 도심의 모든 골목이 사람들로 가득찼지만, 집회는 평화적이면서도 축제 분위기였다"며 "한국의 시위 문화가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유명 가수들이 동참하면서 집회는 구호와 춤이 뒤섞인 거대한 록콘서트가 됐다"고 표현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즐겁고 평화로운 집회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정부를 향해선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3대가 함께 상일동에서 온 정모(43)씨는 "아내, 어머니, 아들까지 데리고 집회에 왔다"며 "다시는 내 아이에게 얼굴 빨개지는 일은 없도록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광화문에 나오게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주 언론 보도된 약물 논란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분노했다. 구로구에서 온 직장인 이모(31)씨는 "청와대에서 비아그라를 구입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외국 여행을 좋아해 해외에 자주 나가곤 하는데 도저히 얼굴을 들고 나갈 수 없어 당분간 해외여행을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친박(친박근혜) 세력 등 정치권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한모(50)씨는 "친박들이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물러나야 하는데, 자리유지에만 혈안이 돼서 제1여당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다"며 "공범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미정·문혜원·공현정기자
lmj091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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