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상 성균관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시론] 과기정책 `장기적 플랜` 세워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610/2016101902102351607002[1].jpg "[시론] 과기정책 `장기적 플랜` 세워야")
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에도 6개 분야의 수상자가 결정되면서 언론에서 많이 다룬 주제 중 하나는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한 명의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일본은 올해도 수상자가 나와 역대 22명이나 된다는 부러움과 반성이다. 특히 OECD 35개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GDP 대비 가장 많은 정부 및 민간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는 것에 비교해 왜 기초과학계가 답하지 못하냐는 따가운 지적이 포함돼 있다.
필자는 연구개발 분야에 올해 19조1000억 원의 정부 예산을 배정했지만, 이 가운데 연구자들이 하고 싶어 하는 연구를 지원하는 자유공모 연구에 지원되는 예산이 5.8%인 1조1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로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어려움을 변명하고 싶다. 최근 기초과학자들과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수행하고 싶다고 줄기차게 건의하니 정부는 내년도에는 주제를 미리 정하지 않는 자유공모 연구비를 1600억원 늘리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정부 연구개발비 중 비중이 올해보다 0.7% 포인트 늘어난 겨우 6.5%에 불과하다. 노벨과학상은 대부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거의 평생을 꾸준히 한 주제를 연구해야 가능하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평생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연구자가 스스로 제안해 수행하는 것이 아닌 목적성이 명확한 과제에 90% 이상 지원되는 실정에서 기초과학자나 대학 연구팀에게서 세상을 놀라게 할 기초연구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연구비 배정 비율의 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는 정책 결정과정이 장기적 전략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교육정책이 100년지 대계라고 하듯이 과학기술정책도 긴 미래를 예측해 수립하고, 급격히 바뀌지 않아야 한다. 지난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두어 4 : 1로 승리하니 며칠 지나지 않아 청와대로 23명의 전문가가 초청돼 간담회를 열고, 국제 콘퍼런스도 하더니, 정부가 5년간 1조원을 들여 투자해야 된다느니,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는 민간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등 다양한 대책 마련 끝에 결국에는 7대 대기업이 210억원을 출자해서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이란 민간연구기관이 만들어졌다. 과연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졌어도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이 만들어졌을지와 정부가 등을 밀어 7개 대기업이 공동으로 출연한 연구원이 인공지능을 육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부는 지난 8월에 ①자율주행자동차, ②포스트 철강 경량소재, ③스마트시티, ④인공지능, ⑤가상증강현실, ⑥정밀의료, ⑦탄소자원화, ⑧(초)미세먼지, ⑨바이오의약 등을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로 선정하여 약 1조6천억원(민간투자 6152억원 별도)을 투자하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1년반후 새 정부가 들어서도 여전히 전략분야일지 걱정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또한 많은 전문가들의 참여와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R&D전략분야 선정이었겠지만 선택한 분야를 살펴보면 알파고, 포켓몬GO, 구글 등의 자율주행차 같은 최근 많은 주목을 받은 선진국 기술에 자극 받은 항목도 있어 보인다. 선진국 정부는 알파고, 포켓몬GO, 자율주행자동차를 지원해주지 않았는데 과연 이들 9개 항목이 모두 정부가 나서서 집중지원해 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역대 정부는 항상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은 기초과학자와 대학의 연구자들을 줄세우기 시킨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2009년 아바타란 영화가 등장했을 때 많은 목적형 R&D의 상당 부분이 3D 관련 과학기술에 집중됐다. 이후에 드론, 3D프린팅, 알파고 등도 유행처럼 등장하면 또 다른 줄서기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목적형 R&D의 줄에 설 수 없는 주제를 연구하고 싶은 학자들은 시류를 타서 자기 주제를 버리던지, 아니면 자기 주제를 지키되 아무런 지원도 없다면 실험이나 대학원생 지원을 포기해 연구를 축소하거나 접어야 한다.
2016년 현재 국가적으로 과학기술 연구비의 양적 규모는 상당히 개선됐다. 이제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연구 등이 균형을 갖추게 하고 특히 정부가 지원해야 할 분야를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챙기는 정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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