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민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신진연구)
![[의과학 칼럼] 백반증, 왜 생기는 걸까](http://contents.dt.co.kr/images/201609/2016092802102351607001[1].jpg "[의과학 칼럼] 백반증, 왜 생기는 걸까")
백반증은 피부의 색소를 생산하는 멜라닌세포가 소실되어 피부에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흰 반점들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탈색소질환이다. 전체 인구의 1%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치료 기간이 길고 또 호전됐다가도 재발이 잦으며, 일생에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경과를 보여 삶의 질을 현격하게 떨어뜨리는 피부질환 중 하나다. 현재 백반증의 치료는 전신적 자외선 치료와 국소적 엑시머 레이저 치료가 근간을 이룬다. 현존하는 치료법만으로 백반증이 완전히 치유되기는 쉽지 않지만, 백반증의 병인을 이해하는 것은 이 질환을 극복하고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반증의 병인과 관련해 최근 밝혀지고 있는 대표적인 가설들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백반증은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이다. 우리의 몸은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자를 식별하여 공격하는 정교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 자가면역질환이란 자신의 면역체계가 외부 침입자가 아닌 본인의 몸의 일부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이 발생한 질환군을 일컫는다. 즉, 백반증은 면역력이 약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멜라닌세포에 대한 자가면역 반응을 보이는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다. 최근 백반증 환자들과 일반인을 비교한 전장유전체연관성분석(genome-wide association study; GWAS) 결과 30개 이상의 유전자변이가 백반증과 연관성이 있음이 확인됐다. 흥미롭게도 이들 대부분이 인체의 면역시스템과 관련된 변이로 밝혀졌는데, 이는 면역시스템에 유전적인 변이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게서 백반증이 발생하기 쉽다는 가설을 뒷받침해준다. 치료의 측면에서도 국소 면역억제제인 타크로리무스(tacrolimus) 연고제를 도포하는 경우, 자외선 및 엑시머 레이저 치료의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음이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또한, 백반증이 신체 곳곳으로 번지는 경우에 전신적인 자가면역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면역억제제인 경구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최근 면역 반응의 신호전달체계에 작용하는 야누스 키나제의 선택적 억제제가 백반증에 효과적이라는 증례가 보고되어 머지않아 면역에 대한 새로운 약제들이 백반증의 치료에 적용될 수 있음을 기대하게끔 한다. 한편, 면역력 증강을 기대하고 복용하는 여러 약재나 건강식품들은 멜라닌세포에 대한 자가면역 반응 또한 증가시킬 수 있고, 따라서 백반증이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둘째, 백반증의 병인으로 산화적 스트레스설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백반증 환자의 멜라닌세포에는 유해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능력이 결핍돼 있기 때문에, 유해산소의 누적이 산화적 스트레스로 작용해 멜라닌세포를 파괴한다는 가설이다. 백반증 환자들은 체내에 항산화 효소가 현저하게 감소되어 있고, 실제로 항산화제의 복용이나 국소 도포가 백반증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항산화 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야채나 과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고 녹차를 즐겨 마시는 생활습관 등이 백반증의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산화적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가장 해로운 생활습관 중 하나가 흡연이다. 흡연은 체내의 항산화 능력을 매우 강력하게 소진시키므로 백반증 환자들에게 있어 금연은 필수적이다.
셋째, 멜라닌세포 유실설은 백반증 환자의 피부에서 마찰, 압박 등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 멜라닌세포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 멜라닌세포가 접착력을 잃고 쉽게 유실된다는 가설이다. 백반증 환자들은 상처가 생기는 부위에 새로운 병변이 발생하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를 쾨브너 현상이라 하며, 외상이나 일광화상 등은 백반증 환자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악화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눈에 띄는 상처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백반증은 외부와 빈번하게 부딪히는 손과 손목, 팔꿈치, 속옷의 고무줄에 의해 압박 받는 허리와 가슴, 그리고 손으로 자주 문지르게 되는 눈과 코와 입술 주변 같은 곳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상처나 마찰, 그리고 진동과 압박과 같은 물리적인 자극을 최소화하는 생활습관이 새로운 병변의 발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반증은 오랫동안 환자뿐만 아니라 많은 의사들에게도 불치병으로 여겨져 왔다. 여전히 치료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치료가 불가능한 병은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꾸준하고 성실한 치료와 더불어 위험요인을 줄이고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을 갖추려는 노력이 백반증의 치료에 더없이 중요하다. 병인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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