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옥 금융증권부장
![[한민옥 칼럼] 되살아난 `금융 낙하산`의 망령](http://contents.dt.co.kr/images/201609/2016091902102258699001[1].jpg "[한민옥 칼럼] 되살아난 `금융 낙하산`의 망령")
금융권이 낙하산 논란으로 다시 시끄럽다. 박근혜정부 임기 말로 들어서면서 금융회사와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관피아(관료+마피아), 청피아(청와대+마피아), 정피아(정치권+마피아),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 등 낙하산들이 줄줄이 투하될 조짐이다. 이미 민간 금융협회 고위직에는 관료나 정치권 출신이 선임되거나 내정된 상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관료사회의 적폐를 없애기 위해 낙하산 철폐 원칙을 세웠지만 2년 만에 말짱 도루묵이 된 모습이다.
지난 12일 신임 이사장 공모 접수를 끝낸 한국거래소는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오는 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장을 선임한다. 당초 최경수 현 이사장의 연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으나 그가 공모에 참여하지 않고,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응모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낙하산 잡음이 일고 있다. 정 전 부위원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이다. 올해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했다.
서근우 현 이사장의 임기가 이달 말 만료되는 신용보증기금도 지난 7월 임원추천위원회가 구성됐지만, 한동안 공모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낙하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1월 임기가 끝나는 유재훈 예탁결제원 사장과 홍영만 자산관리공사 사장의 후임 역시 낙하산 인사의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이미 금융협회와 일부 유관기관은 낙하산 차단막이 뚫렸다. 최근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과 김희락 전 국무총리실 정무실장은 각각 한국증권금융과 연합자산관리(유암코)의 신임 감사로 선임됐다. 두 사람 모두 금융 관련 경력은 전무하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의 2인자 자리인 전무직에도 낙하산들이 줄줄이 투하됐거나 내정됐다. 지난달 초 생명보험협회는 송재근 전 금융위 감사담당관을 전무로 선임했다. 이은태 금감원 전 부원장보는 지난달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으로 부임했다. 20개월째 공석인 손해보험협회 전무자리는 서경환 전 금감원 분쟁조정국장이 유력한 상황이다. 은행연합회 전무도 홍재문 전 금융위 국장이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 본격적인 낙하산 투하는 연말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은행장이 연말부터 내년 3월까지 줄줄이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이미 올해 연말 임기가 끝나는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후임으로 낙하산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현재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 중인 우리은행도 낙하산 창구로 활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임기 역시 올해 말로 끝나는데, 민영화에 성공하더라도 예금보험공사가 여전히 20% 지분을 갖고 있어 정부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하다.
2014년 관료 출신인 지주사 회장과 외부 출신 은행장 간 갈등으로 내분사태를 겪었던 KB금융그룹도 낙하산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회장과 은행장의 분리 가능성이 나오면서 새로운 KB국민은행장에 주택은행 출신인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앞서 4월에는 국민은행 감사에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우리는 권력에 의존한 낙하산 경영자가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해 금융과 산업을 어떻게 망쳐왔는지 충분히 경험했다. 한국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가 대표적인 방증이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KDB산업은행 회장자리는 대대로 낙하산의 전유물이었다. 대우조선 경영비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강만수 전 회장은 대표적인 MB맨이었고, 그 후 산업은행을 3년 간 이끈 홍기택 전 회장은 박근혜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다. 오죽하면 신대식 전 대우조선 감사실장이 최근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서 대우조선의 대규모 부실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영향으로 인한 내부통제시스템의 붕괴라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한국금융은 이제 겨우 아프리카 우간다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비아냥에서 벗어난 상태다. 핀테크,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갈 길이 멀다. 역량 있는 경영자가 임직원과 힘을 합쳐도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따라잡기 부족한 판에 낙하산 논란이 또다시 발목을 잡아서야 한국금융의 미래는 없다.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은 더 이상 금융을 전리품으로 삼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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