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생활과학부 부장
![[안경애 칼럼] 자율주행시대를 기다리며](http://contents.dt.co.kr/images/201609/2016091202102276650001[1].jpg "[안경애 칼럼] 자율주행시대를 기다리며")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2000년대 초. 대한민국의 '길'은 뜨거웠다. IT기술의 진화에 힘입어 도로 위에서는 온갖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다. 길은 그야말로 광활하게 뻗은 '실험무대'였다.
'첨단교통모델도시'와 '지자체 지능형교통시스템(ITS) 프로젝트'를 통해 과천, 제주, 울산 등을 중심으로 전국 주요 도시 도로에 각종 센서와 전광판, CCTV가 설치되고 도시 교통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교통정보센터가 세워졌다.
고속도로의 변화도 극적이었다. 지금 하이패스로 불리는 자동통행료징수시스템(ETCS) 영역은 특히 치열한 전쟁터였다. 하이패스는 수조원대 신시장을 가져올 '황금알'로 부각되면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들이 사활을 건 승부를 벌였다. 수년간의 통신방식 논란이 업계를 들썩인 이후 한국도로공사는 적외선통신(IR)과 무선주파수(RF) 두가지 기술을 사용하는 듀얼방식 시스템을 개발, 외곽순환도로 3개 영업소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했다. ETCS와 텔레매틱스를 결합한 다양한 서비스와 단말기가 선보이고, ETCS 인프라를 활용한 신 교통서비스들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대중교통 혁신은 서울시가 선봉에 섰다. 서울시는 2003년 버스 교통체계와 요금계산 방식을 바꾸고 신교통카드를 도입하는 '대중교통 개혁'을 시도했다. 논란과 리스크를 끌어안고 추진한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버스정보시스템(BIS), 토피스(통합교통정보센터) 등으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가며 서울시는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대중교통체계를 갖췄다.
시장이 뜨거우니 기업들도 신이 났다. 대형 SI업체를 중심으로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기술과 경험 축적보다는 '빠른 사업 추진'에 매달린 정부와 교통기관, 기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예산절감에 초점을 둔 입찰제도, R&D 투자에 소극적이면서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저가입찰을 일삼은 기업들의 행태가 결합돼 스마트교통 산업은 스타기업 하나 만들지 못한 채 '승자 없는 시장'으로 남았다. 뒤이은 프로젝트 가뭄으로 시장과 산업은 더 황폐해졌다.
10여년이 흐른 2016년. 대한민국의 교통은 더 급진적인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도로가 실시간 소통하는 차세대 ITS(C-ITS) 구축, 자율주행 실험도시 건설 등 자율주행을 근간으로 하는 미래교통을 현실화하기 위한 시도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일부 도로에서 이뤄지던 자율차 시험주행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교통과 자동차 영역에서 각각 이뤄지던 기술진화가 융합하도록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맞게 설계된 기존 교통체계를 자율주행 시대에는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 연구도 활발하다. 기업과 연구자들은 가장 스마트한 자율주행차를 완성시키기 위해 기술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10여년 전의 변화와는 스케일이 다른, 기존 교통산업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활을 바꿔놓을 교통혁신이 펼쳐질 전망이다. 미래교통 산업을 쥐기 위해 구글, 애플,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들은 엄청난 베팅을 하고 있다.
새롭게 열리는 산업에서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탄탄한 우리 산업을 키우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 공공입찰에선 예산절감이 애국이었다면 이젠 제대로 된 대가를 지급해 기업이 미래투자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솔루션을 갖춘 스타기업이 나와야 미래 세대를 위한 탄탄한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평가 프로세스도 선진화해 영업 잘 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율주행이 분명히 다가올 미래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우리만의 전략을 만들고 기술과 산업을 키워가며 치밀한 실증을 거쳐야 한다.
탄탄한 '한국형 교통혁신 기업'이 자율주행이 가져다 줄 성장 과실을 따고,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기대한다. 나의 첫 자율차는 '메이드 바이 코리아 플랫폼'으로 달리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