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선임기자
![[예진수 칼럼] 대통령의 경제학](http://contents.dt.co.kr/images/201608/2016082902102251027001[1].jpg "[예진수 칼럼] 대통령의 경제학")
"그가 타이타닉호 선장이었다면, 빙산을 가라앉혔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43대 대통령은 2001년 취임 직후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리더십을 이같이 높이 평가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8년 집권 기간은 실로 미 건국 이래 최장기 경제호황기였다. 만성적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도 흑자로 돌려놨다.
미국 대통령은 4년 중임제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병폐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5년마다
대통령 임기 말이 되면 정책 추진 동력이 상실되고, 검찰, 정치인, 언론 등 파워엘리트 군단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새 정치 세력을 찾아 줄을 선다. 임기 말에 현직 대통령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부가 새로 들어선 허니문 기간에 오히려 강력한 비판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 임기 말에는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해줌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레임덕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는 해법이다. 야당이나 언론 등이 임기 말에 힘을 보태려 해도, 대통령이 반대 세력과 만나 소통하지 않으면 '협치(協治)'가 불가능하다. 임기를 1년 7개월 남겨둔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불통(不通) 대통령'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여소야대 상황까지 겹쳐 공무원 복지부동이 심해지고 기업을 때리는 법안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이 같은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 대통령은 야당과의 실질 소통에 나서고, 식물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와 상상력을 동원해야 마땅하다.
집권기의 경제 실적은 대통령 평가의 중심 테마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 실정과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진입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급랭하자 김대중 정부는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신용카드 권장 정책을 폈다. 2000년 말 266조 원이던 가계부채는 김 대통령 임기 말인 2002년 말 400조 원을 돌파했다. 정책 당국자들과 금융권이 합작으로 빚어낸 '플라스틱 버블'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터지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말 신용불량자는 300만 명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가 직면한 가계 부채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 상황과 판박이다. 가계부채 총액은 6월 말 기준으로 1257조 원이다. 부동산 시장이 조금만 삐끗해도 한국경제 전체가 휘청댈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25일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 등의 대책으로 가계 빚 증가의 고삐를 죄는 대신 공공 택지 공급을 줄이는 등의 땜질 처방을 내놨다. '알맹이'도 '비장함'도 없는 미봉책으로 대응해서는 가계부채 폭탄이 다음 정권 때 터질 수밖에 없다. '독배'를 차기 정부와 국민이 마시라는 것인가.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들의 임기에 높은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려고 애쓰는 바람에 정부 예산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2001년) 100조 원이던 예산은 노무현 정부 때 200조 원(2005년), 이명박 정부 때 300조 원(2011년)을 돌파했다. 박근혜 정부 말인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400조 원을 돌파하는 슈퍼 예산이 편성됐다. 다음 정부 때는 5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국민이 낸 피눈물 같은 세금으로 예산 잔치만 벌여선 안된다. 대통령 경제학이 '국민 희생×정책 실패=장기적 경제 쇠퇴'라면 그 결과는 끔찍하다. 땜질 정책보다 근본적 구조 개혁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선 대통령이 경제문제를 직접 챙겨야 한다. 박 대통령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부실을 신속히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는 정공법을 택하기 바란다. 단순한 부실 기업 정리 차원을 넘어 차기 정부가 먹고살 신산업의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 한국 경제가 절벽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임기 말 증후군과 포퓰리즘으로 경제가 망가지면 남미형 위기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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