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성과보다 더 먼 미래 봐야 지속가능한 진정한 기술혁신 가능"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시대…
작은 성공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감도 얻고
실력도 늘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어"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눈앞의 성과보다 더 먼 미래 봐야 지속가능한 진정한 기술혁신 가능"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 2부> (14) 나라밖에서 심은 과학기술의 씨앗

'셰일혁명' 주역 이성규 미 오하이오대 석좌교수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총독부는 조선인 중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나오는 것을 경계해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교육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익히는 것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생각한 우리 민족은 우수한 학생이 있으면 멀고 먼 친척들까지 힘을 모아 미국 등으로 유학을 보냈다. 주변 이웃들의 성원을 받으며 유학길에 오른 이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싹을 틔웠다. 1966년 한국에 최초로 종합과학기술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되고, 과학기술인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출범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던 재외 과학기술자들은 전 국민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을 다시 일으킬 희망이었고, 스스로 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한 국내 과학기술이 기댈 곳은 해외에서 선진 문물을 흡수한 우수한 과학기술인들뿐이었다.

1970년대 과총의 '국내외한국과학기술자종합학술대회' 등을 통해 국내외 한국 과학기술인들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선진국의 첨단 과학기술을 국내에 흡수할 기회를 만들었고, 이는 낙후된 과학기술을 성장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런 교류는 해외 인력을 국내에 유치하는 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과총이 1987년부터 운영한 '해외과학기술자유치센터'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해외고급과학자초빙사업(브레인풀)' 등을 통해 모국으로 돌아온 과학기술자들은 국내 과학기술 역량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지금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해외 18개국에서 한인과학기술자로 구성된 재외한국과학기술자협회 회원 1만8000여 명이 활동하며 세계 과학기술계에 한국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본지는 과학기술 50년을 맞아 한국 과학기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재외 한인과학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밖에서 바라본 한국 과학기술 역량은 충분히 우수하지만, 미래를 위해선 더욱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빠른 경제 성장과 괄목할만한 과학기술 발전을 이룬 조국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최근 과총 창립 50주년을 맞아 열린 '세계과학기술인대회'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64세 노교수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규 미 오하이오대 석좌교수가 이날 발표한 주제는 '서서히 발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큰 임팩트가 있는 기술 개발'이었다. 제목처럼 살아온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발표였다.

이 교수는 1977년 미국에 건너가 1980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애크런대 석좌교수에 올랐고, 1997년 미주리대를 거쳐 2010년부터 지금까지 오하이오대에서 '지속 가능 에너지 및 신소재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40년 넘게 걸어온 화공학자의 길은 한결같다. 그는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만 36년이 됐지만 1980년이나 지금이나 아침 일찍 연구소에 나가 학생들과 일하고 집에 오면 연구 리포트를 쓰고 책을 집필하는 문서작업을 하는 것이 변함없는 일과"라며 "대한민국 여권을 8번 갱신하는 동안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잠시 들른 일본을 빼면 가본 나라는 오직 한국과 미국뿐이고, 일 년에 딱 한 번, 매년 11월에 열리는 미국 화학공학회에 참석할 때 외에는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미국 화공학계에서 셰일가스를 비롯한 대체 에너지 실용화 분야의 대가로 통하는 이 교수는 "박사과정에서 석탄의 기체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후 평생 탄산가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연구해 왔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며 "탄산가스로 평생 덕을 본 것이 많은 만큼 이를 돌려주기 위해 온실가스로 미움받고 있는 탄산가스를 산업에 유용한 사랑받는 화학물질로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무도 셰일가스에 관심을 두지 않던 30여 년 전, 탄산가스를 이용한 새로운 추출법을 개발해 특허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셰일가스가 차세대 에너지원이 될 것을 직감한 그는 땅속 바위틈에 퇴적돼 뽑아 올리기 힘들었던 가스를 물 대신 이산화탄소로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생산 효율성은 60% 높이고 비용은 4분의 1로 줄인 이 발명 덕분에 세계 2위의 셰일가스 보유국인 미국은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했고, 전 세계 유가 그래프가 새로 그려졌다.

이런 '셰일혁명'과 함께 다양한 대체연료 기술 개발 공로를 인정받은 이 교수는 2013년 실용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미국 과학·공학 명예의 전당(ESHF)'에 올랐다. 지금까지 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회원은 단 59명. 회원이 되면 명예의 전당에 초상화가 걸리고 교과서에도 업적이 소개된다. 이 교수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보다도 빨리 회원이 됐다.

이 교수는 "(ESHF) 회원들을 보면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은퇴한 지 오래된 분들이다. 나는 아직도 누가 추천을 해서 회원이 됐는지도 모른다"며 "한국에선 매년 노벨상 발표를 기다리다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지만, 상은 국력이 높아지면 저절로 나온다. 등수나 결과에 대한 과열된 관심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 현역에서 활동 중인 이 교수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연구 업적뿐만 아니라 우수한 교육자로서 모범이 된 이유도 있었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단에 서길 원했던 그에게 미국에 건너갈 용기를 준 건 지난 3월 고인이 된 이재성 서울대 화학공학과 명예교수였다. 은사의 가르침대로 자신이 배우는 것은 후세에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 뛰어난 과학자보다 훌륭한 교육자로 불리고 싶다는 이 교수는 "미국에 건너갈 당시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 기자재나 시설 등은 아주 빈약했지만, 연구와 교육에 대한 열정과 스승과 제자 간의 학문적, 인간적 유대관계는 이미 세계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며 "우리나라 역사에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중한 '홍익인간'과 '전인교육'이라는 교육 이념이 있고, 이를 한국에서 배웠던 대로 그래도 미국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다"고 말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향교 훈장' 역할을 하는 게 무엇보다 좋다는 이 교수가 연구와 교육 두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산학협력'이었다. 그는 산업계와 활발히 교류하며 100여 건의 특허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관련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연구소를 꾸릴 수 있었다. 기업들은 학생 교육에 열성적인 이 교수를 믿고 연구를 의뢰했을 뿐만 아니라, 여유가 있는 장비를 기부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

이 교수는 "산업계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최신 기술을 과외 하듯이 자세히 가르쳐준다. 이런 경험들이 학생들에겐 매우 큰 기회"라며 "이렇게 배운 제자들이 산업계에 진출해 큰 업적과 성공을 거두고, 다시 우리 연구소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베풀어 준 것에 대해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이 교수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당장 연구비 마련이 큰 숙제였다. 그는 "지금까지 440여 건의 연구 제안서를 썼는데, 이 중에서 300번은 낙방했다"며 "몇 가지 미래지향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특허가 소멸하고 나서야 비로소 산업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아 아쉬운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 경력이 전성기에 이르던 2007년, 갑작스레 청각장애가 찾아왔다. 결국 두 귀로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됐지만, 연구와 교육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한쪽 귀에 인공 와우 이식술을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는 같은 청각장애를 겪었던 토마스 에디슨의 말을 오히려 부정했다.

그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실패를 기다려줄 수도 없을 정도로 세상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시대"라며 "작은 성공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감도 얻고 실력도 늘리면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태연히 받아들이며,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작은 성공들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모국의 후배들에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주제보다 더 멀리 보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연구를 하라고 조언했다. 이는 연구자 개개인뿐만 아니라, 혁신에 목말라 있는 현재 한국 과학기술계에도 함께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다.

그는 "미국이 과학기술을 통해 세계 최강국의 입지를 이어가는 비결은 기초과학 교육이 잘 다져져 있으면서 엄청난 양의 원천 및 부대기술의 상용화와 노하우 축적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특히 여러 학문 분야가 꾸준히 균형 있는 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혁신이란 단어가 최근 들어 다분히 공격적 성향을 띈 유행어로 변질한 감이 있다. 혁신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단어여야 한다. 혁신을 빌미로 다른 이의 연구를 깎아내리거나, 좋은 기술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잘라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인류 역사상 진정한 기술혁신은 불과 너덧 가지밖에 없다. 우리는 진정한 기술혁신과 단기적인 마케팅 성과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그는 "우리 연구자들의 역량은 절대 약하지 않다. 다만 좀 더 미래를 멀리 보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연구개발은 도박이 아니며, 연구자의 인생은 유행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항상 노력하는 성실함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 교육자로서 사명감과 책임감, 그리고 제자들과 산업계, 공동연구자들의 따뜻한 성원과 도움으로 지금까지 연구를 이어올 수 있었다"며 "후학들에게 '겸손·신의·성실·협동·인내·평생교육'이라는 단어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