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나른한 오후 4시께 한국은행 기자실에 물가분석부장이 다급히 들어와서는 갑자기 '물가안정목표제의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날로 예정된 이주열 한은 총재의 '최근의 물가안정목표제 운영상황 설명을 위한 기자간담회'의 '사전브리핑격'이라 했다. 그러면서 "내일 기자간담회의 목적은 '설명'이지 '해명'이 아니다"라고 연신 강조했다.
이 기자간담회는 올 들어 지난 6개월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2016~2018년 목표치인 2%에서 0.5%포인트 이상 크게 밑돈 데 따른 설명책임을 이행하는 자리다. 2012년 11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에 한 번도 도달한 적이 없자 지난해 말 한은이 물가안정목표 운영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결정한 사항이다.
그러나 취재하는 내내 한은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간담회 당일 물가안정목표 미달의 화살은 저유가와 정부의 공공정책 등 외부로만 돌아갔다. 뾰족한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이 총재는 단지 "향후 국제유가가 완만한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말에는 1%대 중반, 내년 상반기에는 2% 수준에 근접하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는 낙관론만을 남겼다. 한은이 저유가를 물가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꼽으며 "앞으로는 반등할 것"이라고 관측한 사례가 오직 이날뿐이었을까.
그럼에도 한은 공보실은 기자간담회가 끝난 직후 '실패'나 '미달'이라는 단어를 기사에 쓰지 말 것을 읍소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은이 물가 관리에 실패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물가안정은 한은의 존재 이유다.
한은법 1조1항은 한은의 설립 목적에 대해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이라 명시하고 있다.
이날따라 한은 본관 현관 앞에 걸려있는 '물가안정'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문혜원기자 hmoon3@dt.co.krhmoo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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