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출신 셰프가 메뉴 개발
환자식 맛없다는 편견 없애
미래과학기술지주 통해
유전자기반 식이관리 서비스
환자식 맛없다는 편견 없애
미래과학기술지주 통해
유전자기반 식이관리 서비스
■ 공공기술 사업화 현장을 가다
(하) 당뇨환자 맞춤형 식단 개발 기업 '닥터키친'
'몸에 좋은 약은 쓰기 마련이다.'
건강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 맛은 으레 '포기 1순위'로 취급되기 쉽다. 달고 짠 맛을 내려면 각종 조미료와 감미료를 넣어 요리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음식에 담긴 영양을 파괴한다. 식사를 통해 영양소를 온전하게 섭취하고 신체 건강을 유지하려면 맛있는 음식을 향한 기대를 접는 게 당연시되는 이유다. 몸이 좋지 않은 환자일수록 입이 즐거운 식사는 '언감생심'이다. 건강을 회복하려면 싱거운 건강식을 먹는 게 미덕이자 의무가 되는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닥터키친'은 당뇨 환자들을 위한 '맛있는 식단'을 개발해 이 같은 통념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미래과학기술지주가 설립·투자한 이 회사는 당뇨 환자들이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맞춤형 식단을 만들고, 가정에서 10분 동안 조리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반조리식품(HMR)을 판매하고 있다. 건강을 담보하는 식단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 주요 연구기관과 협력해 앞선 연구결과를 분석하고, 대한당뇨병학회와 미국당뇨병학회의 지침을 적용해 식이요법을 짜고 있다.
여기에 5성급 호텔 출신 셰프와 함께 요리법을 개발해 한식·중식·일식 등에서 약 300개에 달하는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흔히 맵고 자극적인 음식으로 인식되는 짬뽕과 찌개류도 메뉴로 등장한다. 당뇨 환자들이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식재료도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요리에 활용한다.
박재연 닥터키친 대표는 "당뇨 환자들이 맛없고 빈약한 식사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다른 질병에 비해 당뇨는 환자 개인의 게으름과 부주의 탓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또 치료하기 위해 맛없게 식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된다. 당뇨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식사 메뉴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의문은 더 커졌다. 박 대표는 "당뇨 환자들의 짐을 덜어줘 그들이 보통 사람처럼 건강하고 맛있게 식사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가치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이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식단으로 구체화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표준형 식단 개발을 넘어 맞춤형 식단을 개발하려던 그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맞춘 식단이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방법을 찾던 중 이관수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유전적 특성에 따른 당뇨 연구를 하고 있음을 알고 미래과학기술지주를 통해 이 교수와 만나 유전자 기반 맞춤형 식이관리 개발에 협업하기 시작했다.
곧 설립 1주년을 맞는 닥터키친은 3∼4년 뒤 매출 500억원을 달성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아직 초창기라 매출이 크진 않지만 재구매율이 60∼70%에 달하고, 월 매출이 평균 30∼40%씩 늘어나고 있다. 박 대표는 "닥터키친의 식단을 이용한 소비자들이 '투약하는 약과 주사를 줄였다'거나 '병원에서 칭찬을 받았다'는 후기를 접했을 때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임신성 당뇨 환자 고객들이 많은데 이들이 산부인과에 가서 '이제 병원에 안 와도 된다'는 답을 들었다거나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해서 고맙다'는 후기를 전할 때는 박 대표도 고마움을 느낀다.닥터키친의 활동은 단순히 식단을 짜서 상품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블로그를 통해 당뇨 환자들에게 좋은 우유나 돼지고기 등 식품 정보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잘못 아는 건강상식을 바로잡기도 한다. 건강정보의 경우,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에 문턱이 높고, 틀린 정보가 사실인 양 호도될 때가 많은데 당뇨에 대한 기초지식과 식단 가이드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작해 알리고 있다.
당뇨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다 보니 정작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지 못할 때도 잦다. 최적의 식단을 개발하기 위해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다 보니 살이 찌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들의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과정이다.
닥터키친은 당뇨 환자를 위한 건강한 식재료 공급도 준비하고 있다. 당뇨 환자들은 곤약, 귀리 등 당뇨 치료에 좋은 식재료를 찾아 성지순례 하듯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 채 사는 경우가 많은데, 검증된 식재료를 발굴해 믿고 살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식재료 품질을 검수하고 생산시설을 직접 방문해 확인하는 등 믿을 만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선별해 입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아시아인들은 체형과 체질이 비슷해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하반기에는 모바일앱도 출시할 예정이다. 환자가 먹은 음식 메뉴와 혈당을 기록함으로써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교하게 메뉴를 개선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식이요법 관련 글로벌 1위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며 "경쟁력 있는 식이요법을 무기로 정공법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영기자 ironlu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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