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국회의 `셀프 권력`](http://contents.dt.co.kr/images/201606/20160616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국회의 `셀프 권력`")
필자가 종종 가는 식당의 벽에는 "커피는 셀프입니다"라고 써붙여 놨다. "물은 셀프입니다" 라고 써놓은 집도 눈에 띈다. 바야흐로 self의 시대다. 김종인의 비례대표2번 '셀프 공천'이 시끄럽더니, 2년전 정계 은퇴했다던 손학규의 '셀프 복귀'가 화제다. 북쪽에서는 김정은의 '셀프 대관식'이 세간의 눈길을 끌었고 국회의 '셀프 권력'이 정치권의 논란거리다. 19대 국회가 회기 막판에 상시청문회법을 통과시키자(대통령이 거부했지만) 한국경제의 정규제기자는 "국회가 그렇게 스스로 권력을 강화시켰다. 셀프 권력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2016. 5. 24). 민생에는 무관심한 국회가 스스로 이익집단이 되어 셀프 세비인상, 셀프증원, 셀프휴회, 셀프외유에 셀프갑질을 자행해 왔다.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조차 제때 못한 20대 '위법국회' 역시 유령국회, 식물국회로 국민을 절망시킬까 걱정이다.
'셀프 라운딩'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지난 5월20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시합에서 허인회는 늦잠잔 캐디가 제 시간에 나오지 않아 셀프 라운딩하면서도 홀인원 1개, 버디 5개, 더블보기 1개로 5타를 줄여 중간합계 공동 6위에 뛰어올랐다. 이렇게 셀프를 즐겨 쓰게 된 것은 self-service탓이 아닌가 싶다. self-service - the practice of serving oneself in a store, cafeteria, service station, etc.(셀프서비스란 가게, 카페테리아, 주유소 등에서 자기 스스로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self는 자신, 개성, 자아를 의미하는 명사임으로 커피나 물을 self라고 해서는 안된다. '커피는 셀프서비스입니다'로 써야 한다. 셀프서비스의 형용사는 self-serve다. self는 흔히 다른 명사나 형용사의 접두어로 쓰여 '스스로', '그 자체로'와 같은 뜻을 갖는다(드물게 동사의 접두어로도 쓰인다). self-defense(자기방어), self-employed(자영업의), self-help(자조) 등 self가 들어간 말은 수없이 많다.
박근혜정부 초기 국정원 '셀프 개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북풍공작이다, 댓글이다 해서 대선 때마다 선거 개입으로 국정원이 지탄을 받자 2013년 7월 8일 박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각종 의혹과 공방을 계기로 삼아 국정원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때 신문방송은 대통령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다'고 했음에도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했다. 결과는 유야무야로 끝났다. 정보수집과 수사, 예산집행의 전권을 가진 특권기관이 스스로 알아서 개혁하라는 말은 처음부터 공염불이었다. 언론은 공직자를 격분토록 만들 때 그 존재이유가 있다!
셀프 인테리어라는 표현도 눈에 많이 띈다. 쿡방(요리방송)에 이어 집방(집꾸미기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저비용 셀프 인테리어가 붐을 이루고 있다(중앙일보, 2016. 1. 25). 근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만들고 조립하고 고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건비가 비싼 탓도 있지만 가구를 만들거나 정원가꾸기, 자동차 손보기 등이 취미생활이 되고 있다. 미국인의 단독 주택은 반드시 지하실을 갖추고 있다. 지하실은 대개 각종 연장을 비치한 공방(工房)이다(미국의 남편들은 모두 공돌이다). 미국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차고(garage)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DIY(디.아이.와이) - do-it-yourself의 약자다. DIY는 특히 집에서 스스로 물건을 만들든가 고치는 행위(the activity of making or repairing things yourself, especially in your home)를 뜻한다. 그럼으로 셀프 인테리어는 DIY 인테리어라고 말해야 한다. 예컨대 셀프 세차장은 DIY car wash라고 말하고 가정용품의 제작 수리 장식에 쓰는 재료를 파는 가게는 DIY store가 된다.
1년 전 이케아에서 책상 의자 테이블을 사왔다. 모두가 디아이와이 부품이었다. 값이 싼만큼 자기가 직접 조립해야 한다. 디아이와이는 주로 가구 인테리어 페인팅 등 집가꾸기, 그리고 패션과 관련이 깊은데 이런 셀프족(族)을 영어로는 디아이와이족(diyer)이라고 부른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을 스스로 작성해 담임에게 제출하는 셀프 학생부는 어처구니가 없지만 돈 아끼려고 스스로 만드는 셀프 앨범은 권장할만 하다. 자신의 장례준비를 자식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결정하는 '셀프 장례'가 늘어나고 있다(조선일보, 2016. 4. 28). 고령화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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