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유전체기반 정밀의료센터 추진단 병리과 교수
![[DT광장] 정밀의료, `공공성` 확보해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606/2016061402102351788001[1].jpg "[DT광장] 정밀의료, `공공성` 확보해야")
유전자분석, 정밀의료 등 의료계 논문에서나 보던 단어들이 이제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다. 피 한 방울로 모든 암을 진단하고, 침 한 번 뱉으면 건강 정보와 식이 요법까지 처방해서 비만 관리도 해준다.
불안한 얼굴로 "폐암에 걸릴 확률이 90%래요.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로 제 몸속에 숨어 있다는 폐암을 찾아주세요"라며 특이한 검사보고서를 들고 진료실을 들어오는 환자. 아니 엄밀히 말해 아직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병원으로 오고 있다.
CT, MRI 등 정밀한 검사를 총동원한 결과 아무 암도 발견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불안감을 씻기는 어렵다. '언젠가는 암이 발견될 거야'하는 불안한 심정으로 사람들은 다시 90%의 확률로 내 몸 속에 숨어있을 암을 찾고 치료하기 위해 용한 병원을 찾아 나선다. 국민의 건강증진과 의료비 절감을 위해 추진했던 정밀의료(유전자분석)가 낳은 안타까운 결과,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국가에서는 과학자들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오면 국가 과학 R&D 예산을 적극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저성장의 시대에 인공 지능과 헬스케어산업, 정밀의료가 우리 후세대를 먹여 살릴 산업으로 떠오르고, 국가에서는 이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냉철한 전략을 필요로 하고 있다. 헬스케어산업 전문가들은 사심 없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응답해야 한다.
애플 워치나 구글 핏과 같은 스마트 헬스케어의 등장으로 환자의 건강 상태와 정보를 실시간, 지속적, 정량적으로 파악하고 모니터링 하는 디지털 의료기술이 발전했다. 이렇게 수집된 '빅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생물정보학 또한 고도로 발전하면서 정밀의료는 미래의료 패러다임의 표현형이라 할 수 있는 '4P', 즉 예측(Predictive), 예방(Preventive), 개인맞춤형(Personalized), 그리고 국민 참여(Participatory) 의료로 정의되고 있다.
이에 더해 분당서울대병원이 국가 중앙의료기관으로서 한국형 정밀의료의 실현에 있어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공익성(Publicity)'이다. 정밀의료의 실현이 개인 또는 기업체의 이익이 아닌 국민건강이라는 공익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공익적 마인드가 기본이 되지 않으면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정밀의료의 이익은 소수의 기업이나 병원으로만 돌아갈 우려가 있다. 정밀의료의 직접적 수혜자는 국민이어야 하며 국민의 건강 증대 및 국가 의료비 절감이 정밀의료의 대전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정밀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내 정밀의학 연구가 단지 연구로서의 가치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 산업 등 다른 분야의 가치로 확산시켜 이를 새롭고도 더 나은 가치로 재생산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례로 정밀의료의 실현을 위해서는 유전체와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빅데이터 정보를 분석하고 질병과 관련된 정보를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직업군이 요구되는데, 가칭 '유전체 분석사', '유전체 상담사'와 같은 새로운 직업군은 일자리 창출 및 고용 확대로 이어져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여러 젊은 세대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러한 전문가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해 새로운 직업군 창출에 이바지할 예정이다.
아직은 전문 인력의 부족, 법·윤리 등 사회 제도적 장치의 문제, 정책 지원 부족 등으로 높은 연구 성과에 비해 더딘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실용화 기반을 마련해 인력을 양성하고 정밀의학 관련 인프라 구축을 통해 의료 산업의 발전뿐 아니라 국가적 미래 의료를 위한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IT 강국임과 동시에 정밀의료 추진에 필수적인 바이오뱅크, 건강정보 DB 등의 우수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공공성이 더해진 한국형 정밀의학이 국가, 사회적 지원 속에 성장한다면 정밀의학이 향후 미래 의료의 중추이자 국가 성장 동력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국민에게 앞선 의료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형 정밀의료가 세계 맞춤치료 정밀의료 시장을 선점하고 미래의료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밀의료가 낳은 결과는 양날의 검과 같다.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고 국가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만큼, 정보의 그릇된 사용과 개인의 불안감을 악용한 잘못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정밀의료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할까. 정답은 공공성에 있다. 공공성의 확보가 뒷받침되며, 새로운 일자리 확충으로 국가 경제의 활성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개인의 유전자 정보가 어떠한 형태의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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