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정보미디어부장
![[김승룡 칼럼] `돈 쓰지말라` 강제하는 이상한 나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605/2016053002102251614001[1].jpg "[김승룡 칼럼] `돈 쓰지말라` 강제하는 이상한 나라")
"일단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
지난 2월 정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 말이다. 규제개혁을 국정 핵심 과제로 내건 박 대통령이 현재 'A·B·C만 되고 나머지는 모두 안 된다'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에서 'A·B·C만 빼고 모두 허용한다'는 네거티브식 규제로 전면 전환하겠다며 작심하고 내뱉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네거티브식 규제 철폐는 눈에 띄지 않고, 규제는 더 늘어만 가는 듯하다. 오래된 규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고, 새로운 규제는 더 늘어나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더욱이 A·B·C만 되고 나머지는 모두 안 되는 것뿐만 아니라, 안 되는 것도 구체적으로 '얼마 이상 쓰지 말라'고 상세하게 법으로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헌법 제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 또는 기업의 개별적 소비활동, 경제활동을 제약할 수 없다는 뜻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경제활동의 자유'라는 기본권마저 침해하는 규제 법들이 아주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고, 또 버젓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기업들이 자유롭게 마케팅비를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법이다. 이동통신 회사나 휴대전화 제조사가 휴대전화 제품을 판매하면서, 소비자 1인당 마케팅비(단말기 지원금)를 최대 33만원 이상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게 이 법의 핵심이다. 위헌 소지가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1년 8월째 이 법을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 매일같이 휴대전화 대리점을 모니터링 하고, 이 규정을 어기는 낌새가 있으면 사실조사에 나서 많게는 수백억원 과징금을 물린다. 단통법 시행 후, 통신 시장 경쟁은 크게 위축됐다. 유통점이 줄줄이 폐업했고, 휴대전화 내수 시장은 침체 길을 걸었다. 국민들은 휴대전화 구매비용이 높아지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단통법 폐지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단통법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폐지는커녕 단말기 지원금 상한선인 33만원도 올릴 수 없고, 법을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면 소비자는 물론 기업, 국가 모두에 손해가 돌아간다.
게임 산업에서도 말도 안 되는 규제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성인이 온라인게임을 할 때 아이템 구매 등 월 결제액 한도를 50만원으로 규제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청소년도 아니고 성인이 자유 의지로 돈을 쓰겠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2003년 도입된 이 규제는 13년간 유지되고 있다. 최근 이 한도를 조금 더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곤 하나, 이 역시 위헌 소지가 매우 높다.
여기에 식사비, 선물비, 경조사비까지 3만원, 5만원, 10만원 이상 쓰지 못하도록 하는 '김영란법'이 오는 9월말 시행을 앞두고 있다. 참으로 친절하게(?) 경제생활 속속들이 간섭하는 법이다. 물론 이 법의 취지가 공직자, 교사, 언론인 등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자 하는 것은 십분 이해한다. 허나 정작 최우선적으로 이 법을 적용해야 할 국회의원은 대상에서 쏙 빠져 있고 음식점, 화훼, 과수농가, 농축산업 등 내수 산업에 직접적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 역시 위헌 소지가 매우 높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법에 '얼마 이상 쓰지 말라'고 규정해 시행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찾을 수 없다. 정부가 겉으론 침체된 내수 산업을 살리기 위해 규제를 과감히 없애겠다고 외치지만, 뒤에선 이처럼 세계 유례 없는 규제 법을 시행하고 있으니 국민은 모두 헛말로 들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규제 법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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