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옥 금융증권부장
![[한민옥 칼럼] 금융권의 `민낯`](http://contents.dt.co.kr/images/201605/2016052302102251699001[1].jpg "[한민옥 칼럼] 금융권의 `민낯`")
금융권에 종종 회자되는 말이 있다. 역대 금융위원장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평가할 때나 금융회사 간 대형 인수합병(M&A) 때도 꼭 나오는 말이다. 바로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자는 것이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겠다며 '금융비전'을 발표했고, 임종룡 현 금융위원장의 '금융개혁'도 궁극적 목표는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즉 금융의 삼성전자다. 최근 대우증권을 품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도 인수 후 일성으로 금융의 삼성전자를 이야기했다.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 큰 꿈을 꾸겠다"고.
반면 한국에서 금융의 삼성전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올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금융은 규제산업이고 슬로 비즈니스로 제조업과 상황이 다르다는 게 주 이유다. 더불어 네트워크 비즈니스인 금융산업의 특성과 달러처럼 기축통화가 될 수 없는 원화의 한계, 간단치 않은 언어 문제를 이유로 꼽기도 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의지'다. 금융에서 삼성전자가 나오려면 금융회사가 삼성전자처럼 변해야 한다. 삼성전자처럼 일하고 삼성전자만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성과연봉제 도입 논란을 보면 과연 금융권에 그런 의지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금융종사자들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저성과자 해고를 합리화시키는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합동대의원대회를 통해 총파업을 결의했고, 일부 금융공기업 노조는 노동법 위반으로 최고경영진을 검찰 고발했다. 꼭 노조원이 아니더라도 금융회사 종사자 대부분이 노조의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를 내심 응원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도 노조 못지 않게 강경하다. 금융공기업을 시작으로 민간 금융회사까지 금융권 전반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확산한다는 목표 하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선봉에 서 밀어붙이고 있다. 그 이면에 다음 달 박근혜 대통령의 성과주의 도입 실적 점검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결사적인 태도가 오히려 성과주의 도입에 공감하는 노조원들까지 자극해 극한 대립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왜 금융권에 성과주의를 도입해야 하는지, 한국 금융산업에 맞는 성과주의는 어떤 것인지 진지한 고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금융당국은 무조건 밀어붙이고, 노조는 무조건 반대하는 모양새다.
금융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국내 금융권의 조직문화는 참 경직적이다. 적당히 일해도 월급봉투는 두둑하고 일정 직급까지 오르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연공서열에 따라 전체 급여의 평균 90% 가량이 호봉에 따른 정액급여다. 1인당 연봉은 금융공기업이 8500만원 이상, 민간 은행은 8800만원에 달한다. 전체 공공기관 1인당 연봉(6296만원)의 1.4배, 생산성이 비슷한 500인 이상 대기업 1인당 연봉(5996만원)의 1.5배 수준이다. 그러면서 경쟁력은 아프리카 우간다 수준이라고 비아냥을 듣는다.
물론 이런 구조는 정치권과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금융권의 주요 포스트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치권력과 퇴직 후 노후보장용으로 생각하는 경제관료가 이런 비정상적 구조를 만들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기관장과 이를 빌미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 노조가 야합한 결과다. 그러던 낙하산 기관장이 이제 와 윗선이 시켰다며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자고 하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금융과 관치금융의 얼룩진 사슬을 끊기 위해서라도 금융권의 성과주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을 받는 소위 '무임승차'를 줄이고 금융권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자는데 반대할 금융인은 없다. 삼성전자 직원 1인당 연봉은 지난해 말 기준 1억100만원이다. 금융권보다 훨씬 많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성과연봉제의 본질은 일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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