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디지털산책] `생체정보 분산관리`구축 신중해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605/2016051802102251607001[1].jpg "[디지털산책] `생체정보 분산관리`구축 신중해야")
생체인증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최근 금융결제원은 '생체정보 분산관리시스템' 구축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즉 고객이 등록한 생체정보를 쪼개어 금융회사와 금융결제원이 나눠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시 금융회사의 정보와 금융결제원의 정보를 하나로 결합해야만 원래의 생체정보가 복원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의 생체정보를 한 기관이 독점하지 않으며 정보유출 사고가 일어나도 완전한 정보가 아니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생체정보 보관상의 안전성과 사용자 인증의 호환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있다.
고객의 생체정보를 하나의 기관에서 모두 보관할 경우, 중앙의 생체정보 DB서버가 해킹 당하면 그 피해는 매우 치명적이다. 패스워드 및 PIN과는 달리 제3자에 의한 유출이나 도용시 변경이 용이하지 않은 생체정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를 분산 관리할 경우에는 한 곳의 정보라도 훼손될 경우 원래의 생체정보를 복원해 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시스템의 가용성(availability)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가용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밀 분산(secret sharing)'이라는 기술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이럴 경우 통신장치나 시스템에 걸리는 부하(負荷)가 늘어나는 단점이 있으며, 어떻게 이를 해결했다손 치더라도 최종단계에서 해커가 복원된 생체정보 자체를 탈취하고자 시도한다면 기존의 비밀 분산기술로는 막을 수가 없다. 물론 '함수 비밀 분산(functional secret sharing)'이라는 기술도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이 정도의 기술을 효율적으로 구현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로 외국에서는 기관이나 기업이 생체정보를 수집해 보관하는 방식이 아닌 개별 사용자의 단말에 자신의 생체정보를 직접 저장하는 방식을 주로 택하고 있다. 실제로 생체인증 관련 국제표준규격인 FIDO(Fast IDentity Online) 인증의 경우, 생체정보는 사용자 단말에 암호화해 저장하고, 인증이 필요할 때 단말에서 본인 인증이 완료되면 인증키값만 인증서버로 보내도록 하고 있다. 이럴 경우 인증 과정에서 사용자의 생체정보가 기관이나 기업에 노출되지 않아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며, 만약 노출됐다 하더라도 그 피해가 본인에게만 국한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일부 금융권에서는 FIDO 인증기술과 같이 생체정보를 사용자 단말에 저장할 경우, 금융회사 간 호환이 어려워지며 단말기 제조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문제점들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사용중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일 뿐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문제들은 아니며,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우리는 그동안 '빨리 빨리' 문화에 맞춘 정책들이 실패한 사례를 무수히 많이 봐왔다. 선의로 시작한 공인인증서 활성화 정책이 금융권의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정책(지금은 폐지됨)으로 변질됐으며, 평가수요 적체를 일시에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국내용 CC 평가·인증제도"는 정보보호제품의 품질 저하 및 평가기관의 재정 악화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핀테크 시대를 맞아 최근 금융업계에는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는게 최대 화두다. 그러나 생체정보는 일단 한번 유출되면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아닌 프라이버시 보호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생체정보의 유출은 주민등록번호 유출과는 비교도 안 될 '인터넷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보다 더 신중한 정책 입안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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