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이규화의 경제통하기] 공공입찰 부정행위 뻔뻔해지고 있다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이규화의 경제통하기] 공공입찰 부정행위 뻔뻔해지고 있다
이규화 선임기자

한 보안솔루션 기업은 최근 국세청의 보안시스템 입찰을 위한 사전규격 고지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업계 사람이라면 특정 기업 제품에 유리한 규격이 들어가 있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기존 시스템을 고도화하면서 이전 입찰에는 없던 조항이 추가됐고, 그건 매우 부수적인 규격이었다. 더군다나 열거된 스펙은 특정 업체의 솔루션 규격 설명문을 그대로 베낀 흔적이 역력했다. 이대로 입찰이 진행된다면 10억 원 상당의 사업은 그 특정 외산업체에 돌아갈 것이 명백했다. 보안솔루션 업체는 이의를 제기했고 현재 국세청의 위임을 받은 조달청은 새로운 규격 고지를 준비 중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같은 시기에 국방부 대북확성기 도입 입찰에서도 일어났다. 국군심리전단은 입찰 평가항목에 확성기의 성능과 유지보수 능력과는 상관없는 항목을 신설하고 다른 항목에 비해 최고 4배 이상의 배점을 뒀다. '조달우수제품' 지정을 받은 확성기가 없는데도 조달우수제품 조건을 두어 확성기와 관련 없는 제품이 우수제품으로 지정된 기업이 높은 점수를 받도록 만들었다. 이는 기존 거래기업이나 규모가 큰 기업을 우선하고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신생 벤처기업들을 배제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유지보수 항목과 대리점 보유 항목에서는 더 가관이다. 휴전선 지역에 배치되는 대북확성기임에도 전국 대리점 보유 여부 항목을 넣어 가장 높은 20점을 배점했다. 이 조건을 가장 잘 충족하는 기업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특정 업체다. 대북확성기의 성능 및 운영과 대전이나 부산에 대리점을 갖춘 것과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전국 대리점 수가 많으면 최고 배점 항목에서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했다.

입찰 규격뿐 아니라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국방부는 확성기를 긴급히 추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4월 들어 늑장 고시하며 '긴급공고' 형식으로 입찰공고를 내고 입찰을 끝냈다. 긴급입찰공고는 사전성능평가(BMT) 없이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 183억 원이란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게다가 11월 배치 예정인 시스템을 사전성능평가 없이 도입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북확성기 입찰이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것으로 의혹을 사고 있는데도 국군심리전단은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은 '입찰과정은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현재 대북 심리전에서 우리가 확실한 우위를 갖고 있는 전략자산이다. 이런 중요한 대북확성기 도입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면 과연 국민이 용납할까.
국세청 보안시스템 도입과 대북확성기 도입 입찰은 ICT 분야를 포함한 전체 공공입찰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더욱 경계할 것은 전에는 부정행위로 의심받는 행위가 은밀히 이뤄졌지만, 이제는 특정 업체 스펙 설명서를 그대로 베끼거나 대북확성기 사업에서 보듯 아예 특정 업체 조건에 맞춘 규격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전에는 불공정 의혹이 제기되면 해명·사과하고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요즘은 확성기 사업처럼 해명도 않고 그대로 밀어붙이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정권 후반기에 나타나는 공직자들의 '나사 풀림' 또는 '레임덕'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기강해이가 비단 입찰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닐 것이다. 정치적 격변기의 관리 누수와 산업구조조정의 혼란 속에서 점차 대범해지는 부정행위를 솎아내지 않으면, 중소벤처와 창업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는 정부정책들은 허사가 될 것이다. 그것이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비리는 경제회복의 최대 적이다.

이규화 선임기자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