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 입국`, 연구 총량부터 늘리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604/2016041102102351607001[1].jpg "[시론] `과학 입국`, 연구 총량부터 늘리자")
전문기사와 알파고의 바둑 대국은 승패를 넘어 인공지능에 대한 인지도를 한층 끌어올린 세기적인 사건이었다. 아직 인간이 승리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측이 크게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세돌 9단이 보여준 투지와 집중력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원숙함은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알파고 뒤에 대륙을 오가는 수 천대의 컴퓨터 계산이 있었음이 알려진 후 인간승리라는 여운이 잔잔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머지않아 기계가 인간 지능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더욱 분명해 진듯하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는 필자에게 4월은 항시 '과학의 달'로 다가온다. 과학기술처의 탄생을 기념해 제정된 '과학의 날(4월 21일)'을 전후해 과학계 내부 행사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 과학문화를 알리는 크고 작은 축제와 행사가 다양하게 기획되고 추진되는 달이다. 금년에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들고 나온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와 알파고의 출현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더욱 고조되어 있다. 특히 올해는 KIST와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설립된 반세기가 되는 해이어서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100년을 조망하는 행사들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올해 '과학의 달'의 화두는 과학기술이 앞으로도 우리의 경제와 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일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기술은 빠른 산업화를 달성시킨 동력이었고 정보화에 따른 제3차 산업혁명에 동참하게 한 추진력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제조기술과 첨단 제품생산 역량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이런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 또는 더욱 향상시키는지에 당면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4.0 시대라는 21세기 흐름에 동참하려면, 더 높아진 기술 장벽을 넘어야 한다. 지금까지 성공한 따라가기(Fast Follower) 패러다임으로 좀 더 잘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첨언하자면, 새로운 길을 먼저 여는 창조적인 역량을 빠르게 확충해 국가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도약시켜야 한다.
이제부터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을 구분하고, 기술 중심에서 과학중심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2014년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현황을 보면, 총 예산규모는 약 6조 달러로 세계 6위임에도 대부분을 응용 및 개발 연구에 쓰고 있고 기초과학은 17%에 머물고 있다. 단기적 기술현안 문제 해결에 치중하는 민간기업 투자가 76%에 달함에도 정부 투자마저도 약 70%가 응용·개발 연구에 쓰이고 있다. 대학마저 산·학 협력 촉진이라는 명분으로 대학 연구마저 중견·중소기업의 단기현안 문제에 매달린 후진성부터 탈피해야 한다.
우리의 과학기술 생태계를 국제 규범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세계 1위(4.29%)임에도 정부와 공공 재원의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OECD 평균인 28%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23%)이다. 이를 최소 30% 이상으로 늘려서 기초과학 연구의 총량을 늘려야 할 것이다. 지난 9월 중력파의 존재를 정확하게 검증한 것처럼 지금 세계는 한 세기 전에 이어 새로운 과학 전성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바탕에는 20세기 동안 눈부시게 발전된 물리·화학적 응용기술과 계측 및 제어 기술이 기초과학 연구에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 환경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응용 역량과 인적자원도 상당부분 승산이 있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방향과 과학기술계의 추진 의지다. 성과 달성이 더디더라도 어려운 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과학자의 근성이 존중돼야 한다.
다음은 연구개발 제도의 혁신이다. 1982년 도입된 우리의 국가연구개발 사업 관리제도는 개량·개선을 거친 1999년 체제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의 과학기술 환경은 엄청나게 변했음에도 정부제도의 기본 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산투자의 효율성이 낮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급기야 정부예산은 사실상 동결됐다. 총량이 미국의 15.8%, 중국의 19.6%, 일본의 45%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도혁신을 위해서 과학기술분야의 연구개발 투자의 공과와 생산성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GDP 대비 1위임에도 사업화 정도(43위), 산업부가가치 창출(20위), 기술무역(20위)의 순위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과학기술 투자는 상업생산을 위한 자원 투입과 달리 단기적으로 정량화되는 성과 외에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효과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처럼 과학기술 인프라 확충, 우수인력 양성, 문화적 자긍심 등이 적절하게 평가돼야 함에도 이런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실정이다.
앞으로 100년을 조망하는 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에 방점을 찍어 진정한 의미의 과학을 하는 나라, 인류문명에 지적자산을 보태는 나라, 그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신기술과 신제품을 발명하는 나라를 기대해 본다. 중국의 과학굴기에서 보듯 당장 기술적 쓰임새가 없더라도 긴 안목으로 보고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키우는 과학입국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창조경제로 소망하는 국민 복지와 행복, 문화 향유와 도덕성 등 문화강국인 선진 사회로 접어드는 길이 될 것이다.
금동화 KIST 연구위원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