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와 분쟁 가능성에
국가 책임소재는 모호
검색사업자 수정 요청
구글 등 규제준수 미지수
국내기업 역차별 불보듯
국가 책임소재는 모호
검색사업자 수정 요청
구글 등 규제준수 미지수
국내기업 역차별 불보듯
'잊힐 권리' 갈등 배경은…
'한국판'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오는 4월부터 시행할 방침을 밝혔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들은 "기술적, 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가이드라인 수정을 요청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비판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5일 공개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가칭)' 초안은 인터넷 이용자 누구나 인터넷상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대해 게시판 관리자와 검색 사업자에게 접근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올린 게시물 대부분은 본인이 삭제할 수 있었지만 △댓글이 달리면서 삭제할 수 없게 된 경우 △회원 탈퇴 등으로 회원정보가 파기돼 직접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게시판 사업자가 폐업해 사이트 관리가 중단된 경우 △사자(死者)의 경우 등에는 삭제할 수 없었다.
방통위는 접근배제를 원하는 게시물의 위치(링크)와 본인 여부 확인 가능한 자료, 요청 사유 등을 작성해 인터넷 사업자에 요청서를 제출하면, 사업자가 해당 게시물을 '블라인드 처리'를 하도록 지침서를 내린 것이다. 죽은 자의 경우에도 생전에 제 3자에 위임해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방통위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2014년 유럽재판소(ECJ)의 판결로 불거진 이른바 '잊힐 권리'의 연장선에 있다. 2010년 스페인의 한 변호사는 구글을 상대로 "빚 때문에 집이 경매에 부쳐진 내용이 담긴 기사가 구글서 검색되지 않도록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 2014년 승소했다. 유럽위원회가 공개한 판결문에 따르면 잊힐 권리란 일정 조건 아래에서 개인이 검색 엔진 제공자에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링크를 제거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국내외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방통위는 이번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등 권리간 충돌로 논란이 지속됐다"며 "최소한의 범위에서 잊힐 권리를 주기 위해 이번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이번 가이드라인이 유럽의 잊힐 권리를 뛰어넘는 것으로, "너무 나갔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측은 "유럽의 잊힐 권리는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리이고, 방통위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본인 글에 대한 삭제 내용"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도 본인 글에 대한 삭제와 관련된 잊힐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진규 네이버 개인정보보호팀장은 "정보통신망법이 정한 '이용자'는 서비스를 이용 중인 것을 전제로 한다"며 "탈퇴한 회원은 서비스 이용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탈퇴한 이들까지 이용자로 인정하는 것은 관련법을 넘어서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자를 이용자로 포함한 부분도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사업자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이드라인 초안은 이의 신청자의 게시글 배제 여부를 '사업자가 유추 가능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했다.
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전적으로 사업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사업자와 이용자 간 분쟁 가능성만 늘리는 것"이라며 "앞으로 법적 분쟁으로 불거졌을 때 판단에 대한 책임은 모두 사업자가 지고, 국가의 책임소재는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업자들이 이번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설비투자와 추가 인력 등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반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협회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 시행에 따라 또 다른 서버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추후 불거질 소송비용도 문제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악성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소송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역차별 문제도 있다. 자기 게시물 삭제가 일반화할 경우, 해외 인터넷 포털 등에는 검색되는 결과들이 국내 사이트에서만 사라져 '검색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포털업체 관계자는 "구글이 과연 이번 방통위 가이드라인을 따를지 의문"이라며 "이번 지침은 국내 기업에 한해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내 기업에 또다른 역차별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채희기자 poof34@dt.co.kr
'한국판'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오는 4월부터 시행할 방침을 밝혔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들은 "기술적, 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가이드라인 수정을 요청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비판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5일 공개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가칭)' 초안은 인터넷 이용자 누구나 인터넷상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대해 게시판 관리자와 검색 사업자에게 접근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올린 게시물 대부분은 본인이 삭제할 수 있었지만 △댓글이 달리면서 삭제할 수 없게 된 경우 △회원 탈퇴 등으로 회원정보가 파기돼 직접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게시판 사업자가 폐업해 사이트 관리가 중단된 경우 △사자(死者)의 경우 등에는 삭제할 수 없었다.
방통위는 접근배제를 원하는 게시물의 위치(링크)와 본인 여부 확인 가능한 자료, 요청 사유 등을 작성해 인터넷 사업자에 요청서를 제출하면, 사업자가 해당 게시물을 '블라인드 처리'를 하도록 지침서를 내린 것이다. 죽은 자의 경우에도 생전에 제 3자에 위임해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방통위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2014년 유럽재판소(ECJ)의 판결로 불거진 이른바 '잊힐 권리'의 연장선에 있다. 2010년 스페인의 한 변호사는 구글을 상대로 "빚 때문에 집이 경매에 부쳐진 내용이 담긴 기사가 구글서 검색되지 않도록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 2014년 승소했다. 유럽위원회가 공개한 판결문에 따르면 잊힐 권리란 일정 조건 아래에서 개인이 검색 엔진 제공자에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링크를 제거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국내외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방통위는 이번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등 권리간 충돌로 논란이 지속됐다"며 "최소한의 범위에서 잊힐 권리를 주기 위해 이번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이번 가이드라인이 유럽의 잊힐 권리를 뛰어넘는 것으로, "너무 나갔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측은 "유럽의 잊힐 권리는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리이고, 방통위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본인 글에 대한 삭제 내용"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도 본인 글에 대한 삭제와 관련된 잊힐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진규 네이버 개인정보보호팀장은 "정보통신망법이 정한 '이용자'는 서비스를 이용 중인 것을 전제로 한다"며 "탈퇴한 회원은 서비스 이용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탈퇴한 이들까지 이용자로 인정하는 것은 관련법을 넘어서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자를 이용자로 포함한 부분도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사업자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이드라인 초안은 이의 신청자의 게시글 배제 여부를 '사업자가 유추 가능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했다.
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전적으로 사업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사업자와 이용자 간 분쟁 가능성만 늘리는 것"이라며 "앞으로 법적 분쟁으로 불거졌을 때 판단에 대한 책임은 모두 사업자가 지고, 국가의 책임소재는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업자들이 이번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설비투자와 추가 인력 등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반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협회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 시행에 따라 또 다른 서버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추후 불거질 소송비용도 문제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악성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소송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역차별 문제도 있다. 자기 게시물 삭제가 일반화할 경우, 해외 인터넷 포털 등에는 검색되는 결과들이 국내 사이트에서만 사라져 '검색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포털업체 관계자는 "구글이 과연 이번 방통위 가이드라인을 따를지 의문"이라며 "이번 지침은 국내 기업에 한해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내 기업에 또다른 역차별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채희기자 poof3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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