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창의경영 막는 `유령 규제` 풀어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603/2016030202103951607002[1].jpg "[시론] 창의경영 막는 `유령 규제` 풀어라")
유령규제가 우리 경제에 떠돌며 은근히 기업의 활동반경을 조인다는 괴담이 돈다. 유령규제는 모범규준이나 코드(code) 등의 이름을 갖는 행정지도나 권고사항으로 법적 강제력은 없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가 관리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행하지 않을 때의 제재 주체와 제재 수단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령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법적 규제와 같은 사실상 규범력을 가진다.
과거에도 유령규제는 많았다. 계획경제 시대에는 은행권을 활용한 관치금융이 만연해 정부가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은행경영에 개입했다. 지배구조가 엉성했던 은행 내부에서도 불투명한 절차를 거쳐 지점장의 권한으로 대출이 이루어진 사례가 많았다. 유령규제는 사고가 나도 원천적 책임의 소재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제강점기에는 회의록 등 은행 경영에 대한 기록들을 많이 남아 있으나 해방 후에는 은행 경영에 대한 기록들이 부실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최근에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금융위원회에서는 금융회사 수장과 사외이사들의 책임을 강화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만들었다. 주요 내용 중 하나로 은행과 은행계 금융지주회사는 매년 주총에서 5분의 1 내외에 해당하는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하도록 했다. 사외이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음에도 교체되는 사외이사가 나오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다. 전문성이 중요시되는 은행권의 사외이사를 유능한 인재들이 기피하는 현상까지 상상할 수 있다.
지난 해 주총 시즌에서는 배당을 얼마나 주느냐가 화제였다. 정부가 기업이익환류를 강조하면서 저배당기업에게는 추가 과세하는 한편, 연기금이 저배당기업에게 압박을 가하도록 했다. 문제는 적정 배당을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사항이 수없이 많고, 같은 업종에 속한 기업이더라도 경영환경과 전략 그리고 자본시장의 정보 불균형 상태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적정 배당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업들의 배당 행태를 분석해 현실을 설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적정 배당금 기준을 정부나 연기금이 정해 주겠다는 것은 문외한이 전문가인 당사자의 방향을 정해 주겠다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정부나 연기금이 원하는 배당을 하고, 그에 따라 기업은 자금조달의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모든 기업에게 표준화된 잣대를 들이대는 유령규제는 기업의 체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최근에는 재벌기업 오너들의 만행을 옥죄고자 일명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기관투자자들이 수탁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원칙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경영 관여활동을 열거하거나 수탁자 책임이행을 위한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그릇된 경영을 일삼는 경영자와 이를 묵과하는 기관투자자에게 경종을 울릴 필요는 있다. 그러나 유령이 무서워 과다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거나 시늉만 내는 부작용은 삼가야 한다.
유령규제는 시장의 자정능력을 약화시킨다. 다른 기관투자자가 수탁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투자기업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방관하고 있을 때 어느 기관투자자가 수탁자의 이익을 해치는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표명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자발적 차별화 노력을 위축시킬 것이다. 투자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기업의 자발적 의지도 유령규제에 파묻힐 것이다.
우리 경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기업들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과 다르고, 다른 기업보다 튀고자 하는 기업가정신이 경제를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이끌 것이다. 정부는 유령규제로 정형화해 기업들을 비슷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기업이 창의적 발전을 할 수 있도록 경쟁적 차별화를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과 효율성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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