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착한 몸매`의 유혹](http://contents.dt.co.kr/images/201602/20160226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착한 몸매`의 유혹")
바야흐로 '착한' 시대가 도래했다. 착한 가격, 착한 식당, 착한 몸매 등과 같이 '착하다'는 형용사가 이제껏 결합하지 않던 명사와 결합한 '착한' 표현들이 넘쳐난다. 단 한 사람의 의인이라도 있었다면 타락의 도시 소돔조차도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데 착한 것으로 가득 찬 우리 사는 이곳은 진정 복 받은 불멸의 땅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와 같은 '착함의 과잉' 현상은 다분히 역설적인 것이다. 선(善)의 가치가 희귀해진 시대에 선에 대한 윤리적 요구 같은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이라고 보기에는 이와 같은 표현 속에는 역설의 시니컬함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 새로운 표현의 결합 법칙은 무엇일까? 가수 박진영의 노래 <어머님이 누구니>의 가사는 그 답을 명확히 가르쳐준다.
"앞에서 바라보면 너무 착한데, 뒤에서 바라보면 미치겠어. 오우 예."
우리 시대의 언어 속으로 파고드는 '착함'은 이처럼 앞뒤가 다른 하이브리드적인 몸, 잡종의 몸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섹시함을 굳이 드러내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허벅지를 굳이 드러낸 착한 몸매의 십대 소녀들과, 사심 없이 순수하게 그녀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는 삼촌들에 의해 '착한' 결합은 형성된다. 그런데 이 때 주목할 것은 삼촌들의 음험한 욕망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착한 몸매와 착한 삼촌들의 결합 속에서 상품과 소비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핑크스처럼 잡종의 몸을 지닌 착한 몸이 수수께끼를 낸다. 순진무구 그 자체를 의미하는 '베이비'라는 단어와 욕망의 대상인 '글래머'를 결합한 신조어는?
수수께끼의 정답을 우리 모두가 어렵지 않게 맞힐 수 있다. 정답은 '베이글'이다. 베이글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그러므로 착한 상품이다. 착한 몸은 상품화된 몸이며, 만족도가 높은 상품은 착한 것이다.
극작가 브레히트는 <사천의 착한 사람>을 통해 비슷한 문제를 다뤘다. 신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단 한사람의 의인을 찾기 위해 세상으로 내려온다. 신들이 찾아낸 것은 자신의 누추한 방을 신들이 하루 밤을 묵어갈 수 있게 내준 창녀 센테였다. 하지만 신들이 보상으로 주고 간 돈으로 작은 가게를 꾸린 센테가 사업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슈이타라는 악인으로 종종 변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의 상품화된 착한 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공황기 후반인 1930년대 말 브레히트가 파악하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착함과 악함은 한 몸 속에서 분열되어 있고, 이 분열된 자아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웠다는 점이다.
현재의 세계에서 착한 몸은 분열된 몸이 아니다. 이질적인 것들이 조화를 이룬 행복한 몸, 그것이 착한 몸이다.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몸은 선함의 표피 속에 숨지 않는다. 오히려 '착함'이라는 가치를 전유하려한다. 자본이 선함을 정의하는 것이다. 물론 상품화에 저항하는 자세로서의 '착함'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건강하고도 맛 좋은 식사를 '착한 가격'에 제공하는 '착한 식당'이 그 한 예다. 합리적인 생산과 합리적인 소비가 세상 속에 '선함'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착한 식당을 찾아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피디가 각종 의혹 속에서 하차하고 '착한 식당'이라는 호칭이 단지 광고의 수단으로 전락하듯이 상품화의 힘은 저항하는 윤리적 태도를 이내 포섭해버리고 만다. 착함은 가치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정보에 불과한 것이 된다.
'착함'의 원래적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상품화의 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연극은 불행히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히도 적극적인 상품화로부터 멀리 떨어진 누추한 영역이다. 연극을 통해 다시 한 번 질문해보자. '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극단 코끼리만보의 배우들과 연출가 김동현이 공동 창작한 연극 <착한 사람 조양규>는 우리 시대의 주류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착함을 정의한다. 조양규는 고독사하여 8개월만에 발견된 노인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했는지 그의 시신은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연극은 착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절한 눈물을 섞어 팔수 있도록 상품화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서울의 고물상, 전주의 권투도장, 여수 홍합공장, 충북 보은의 이발소 등등의 장소로 조양규의 삶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위해 배우들은 그의 삶을 탐구하고, 사유하며 죽은 그와 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와 그에 대해 말하는 주변 사람들을 제 몸으로 연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작 조양규가 착한 사람이었는지를 확인하지는 못한다. 결국 이 연극에서 지시하는 '착한 사람'은 조양규가 아니다. 착한 사람은 조양규라는 인물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말을 내어준 배우들이다. 배우들은 죽은 조양규의 시체가 들고 있던 전화기의 저편에서 그에게 화답하는 이들인 셈이다.
세상의 저 구석에서 보이지 않는 몸을 지닌, 보잘 것 없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조양규 되기를 시도하는 착한 사람들이 행하는 바이다. 그들은 착한 몸에 환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역시 착한 몸으로 환호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상처 입은 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닮았다.
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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